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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서 / 권보드래

등록 2014-12-26 18:36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몇해 전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갑자기 유행한 적이 있다. 유달랐던 건 그 신어가 놀라운 속도로 퍼졌다는 사실이다. 비인간에의 열망을 처음 냄새 맡았던 것은 그때다. 사이코패스를 다른 정신질환자와 구분 짓는 건 공감 능력의 철저한 결여다. 옆에 있는 인간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울고 웃고 고통받으리라는 실감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 피 흘리고 울부짖는 걸 보긴 한다. 그러나 그저 볼 뿐이다. 아마도 의아하고 짜증스런 느낌으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사이코패스는 문제아들을 괴물로 만들어 버리는 효과가 있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라는 진단이 그 주변에서 지도와 협력의 책임을 지워버리듯, 사이코패스라는 명명은 교정과 타협의 여지를 말소해 버린다. 그런데도 사이코패스란 단어를 둘러싸고는 매혹의 기운이 있었다. 차라리 저렇게 될 수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돌아보다간 나 자신의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일진대, 나만을 절대적 중심으로 삼을 수 있다면.

20대 때는 ‘착하다’는 단어를 참 좋아했다. 표가 났나 보다. 그 단어를 발음할 때면 표정까지 달라지곤 했단다. 아마 선망과 찬탄과 소량의 연민이 섞인 표정이었겠지. 갓난아이 볼 때 표정이 절로 부드러워지듯, 착하다는 단어는 꼿꼿이 세운 신경을 일시에 풀어버리는 효과가 있었다. 위협이 될 리 없는 존재. 제가 상처 입을지언정 남을 다치게 하지 않을 존재. <워낭소리>의 소와 촌로와 <바보>의 승룡이 같은 존재. 이해와 타산을 몰라서 절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존재.

그 착한 사람들이 불의와 싸우는 장면은 내 청춘의 원형적 장면이다. 더 순수하고 더 민감하므로 더 깊이 상처받는 사람들, 남이 다치는 걸 차마 볼 수 없어 제 온몸으로 권력에 맞서는 사람들. 그야말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순간이 있었다. 정치며 변혁이며 과학 같은 말보다 마음을 움직였던 건 그 선하디선한 찰나였다.

도덕과 미학이 기묘하게 혼합된 그 감각은 아직 남아 있다. 한편 사이코패스라는 단어에 흔들리던 강의실의 풍경도 선명하다. 20세기의 한국과 21세기의 한국이 찢겨 있는, 무엇보다 인간이고자 하고 필사적으로 비인간이고자 하는 정반대의 경향을 보면서, 그래서 마음은 자꾸 갈피를 잃는다. 한쪽에선 “누군가 내려야 한다고? 왜, 왜…? 이렇게 살게 됐는데 왜…?”라고 묻고 다른 쪽에선 “내려, 제발 내려! 안 내리면 밀어버릴 테야!”라며 소리 지른다. 이 아수라장에서 마땅히 ‘저들’이어야 할 사람은 극소수다. 대부분은 함께 달려온 ‘우리’다.

이대로 가다간 양쪽 다 극단화될 수밖에 없으리라. ‘인간’이 자기 정당성을 과신하는 동안 ‘비인간’은 어설픈 인간주의를 위반하는 데 점점 희열을 느끼게 될 게다. ‘인간’이 인간답고 아름다운 내면에 매달려 있는 만큼 ‘비인간’은 위반을 논리화하면서 위반 자체가 힘이요 권력이라고 여기게 될 게다.

광화문의 단식투쟁 대 폭식투쟁 같은 기묘한 장면을 남기고 2014년도 저물어 간다. 4월16일, 저 바다에 갇힌 채 끝내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생각한다. 목숨, 되살릴 길 없다. 죽음을 매순간 무한히 기억하는 방법 또한 없다. 나는 진작 염치없게도 옷을 사고 미식(美食)을 즐긴다. 다만 망각의 틈새로 종종 세월호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10년 후, 20년 후, 그럴 때 부끄럽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 꽃다운 목숨의 막막한 무게 앞에 ‘인간’과 ‘비인간’으로 찢기던 마음은 하나였을 텐데.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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