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현 논설위원
2014년을 떠나 2015년으로 향하는 땅콩항공 마지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퍼스트클래스에는 조 부사장님도 탑승해 계시고, 다른 회사 경영자들도 함께 자리를 잡고 있다. 여전히, 여기저기서 “너, 내려!”라는 고함이 난무한다. 이미 천지가 온통 ‘장그래’들인데, 승무원이든 승객이든 죄다 ‘장그래’로 만들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내리라고 명령하고 싶어 안달이다. 동반자로 여겨야 할 사람을 언제든 환불하고 내던질 수 있는 물건쯤으로 취급하는 태도가 어쩌면 그리들 똑같은지. 경영자들을 대표한다는 ‘경총’이나 ‘땅콩’이나 각운까지 딱딱 맞는다. 이런 소란에도 기장은 조 부사장에게 그랬듯 오히려 고함치는 사람들 편에서 고분고분하다. <미생>이 아무리 심금을 울린들 무엇하랴. 여기는 퍼스트클래스, 공감이 통하지 않는 공간이다.
기내에는 다른 소란도 끊이지 않는다. 기장의 존재감이 워낙 없는지라 조종간을 실제로 잡은 게 누구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흉흉한 소문이 기내에 퍼졌다. 승객들이 책임자의 석명을 요구했지만, 헛소문일 뿐이라는 짤막한 안내방송만 나온 뒤 비행기는 이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객을 뭘로 보느냐는 성난 목소리가 분출할 즈음, 기내의 분위기를 일신하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무장한 어느 승객이 비행기를 납치하려 한다는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객실이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보안요원에게 붙잡힌 그는 장난감 총조차 지닌 게 없고 뜬구름 잡는 소리나 되뇌는 사람이었다. 이로써 소란이 가라앉는 듯했는데, 뜬금없이 9명의 정예요원이 출동했다. 이들은 일부 승객들의 불안감에 영합한 8 대 1의 결정으로 문제의 승객은 물론 멀쩡한 그 일행들까지 순식간에 비행기 밖으로 내쫓아버렸다. 비행기는 한참을 회항해야 했다. 이들 요원의 원래 임무는 이런 게 아니었다. 다수가 하자는 대로 따르는 게 세상사의 순리지만 어쩌다 이성을 잃은 다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 소수를 괴롭히는 경우가 있으니, 바로 이때 방패막이로 나서는 게 정예요원의 임무요, 그 때문에 다수의 결정을 엎어버릴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렇기에 이 요원들은 특수훈련을 거쳐 심사숙고의 지혜를 습득한 자들로 임명해야 할 터. 그런데 지혜보다는 완력이 발달한 저 8명은 오히려 우중의 횡포를 집행하는 수족이 되고 말았다. 승객들보다 더 설쳐대는 이들의 우악스런 모습에 기내에는 얼음 같은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기장은 뭘 하는지 모르겠고 승무원들은 내리라는 고함에 허둥대고 승객들은 잔뜩 주눅들어 있는 기내 풍경이라니. 목적지를 향한 비전과 설렘, 열정, 도전 같은 비행 본연의 활기를 모두 잃어버린 비행기는 비척비척 활주로를 달렸다. 승객들은 이 비행이 안녕할 것인지 걱정하며 안전띠를 바짝 조였다. 불안감을 느끼지 못하는 건 조종간을 잡고 있는 그들과 고함치는 퍼스트클래스 승객들뿐인 듯하다.
동체가 이륙하고 동그란 창밖으로 세상이 작아지면서 저 아래 세월호를 삼킨 바다가 멀어져 간다. 날씨가 궂은 건 아직 흐르는 눈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304명을 태우지 못하고 비행기는 떠났다. 세 모녀에게도 탑승권을 주지 못했다. 더 작아지는 저 땅 위에서 ‘장그래’의 형제들은 오체투지로 기어서 2015년을 향하고 있다. 굴뚝 위 고공을 맨몸으로 비행하며 새해를 맞는 이들도 있다. ‘땅콩스러운’ 비행기나마 타고 2015년에 도착할 나는 절망이란 말을 꺼내기도 미안해진다. 그래도 목적지에 내려 그들을 다시 만나고 또 잊지 않기 위해, 웃음을 잃지 말고 힘을 내자는 바람을 전하려, 이렇게 허튼 이야기라도 지어보는 것이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