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란 소설가
둘째아이와 공항에서 만났다. 떨어진 지 두달 반 만이었다. 쭈뼛거리던 아이가 다가와 안겼다가 잠시 뒤 해준 말은 귀를 의심케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이 일을 한시라도 빨리 엄마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타국에서도 하루에 한번 인터넷으로 뉴스를 확인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수사 과정이 보도되는 내내 입에 담을 수 없는 단어가 그대로 노출되고 범인이 검거되었을 때는 얼굴이 그대로 공개되어 놀랐다.
아니나 다를까 둘째는 잠깐 자리를 비운 제 아빠의 노트북에서 그 기사를 보았다. 그 단어를 보았을 때는 무서웠지만 그런 만큼 호기심도 생겼을 것이다. 클릭해 들어가 띄엄띄엄 기사를 읽어가는 동안 충격을 받았고 그 단어가 그만 머릿속에 새겨지고 말았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 한글을 깨치니 이런 문제가 생긴다.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고, 만나자마자 또 야단부터 치고 말았다. 그애가 새겨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그런 글을 누구나 다 읽을 수 있도록 띄워놓은 거냐고 되묻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점점 더 선정적이고 자극적이 되어가는 기사 보도에 늘 위기를 느끼고는 했는데 이제 현실적인 문제가 되고 말았다.
수전 손태그는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에서 사진을 예로 들어 이런 문제에 대해 신랄하게 꼬집었다. 사진(이미지)이 점점 더 폭력적이고 자극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대량 복제된 이미지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한편 대중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우리는 전쟁 보도 사진을 보면서 그곳의 참상에 대해 공감하기보다 그들을 우리가 아닌 그들로 나누면서 우리가 그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안도하기에 이른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로서의 더 자극적인 이미지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접한 기사는 세월호 희생자를 비방한 악플로 고소된 십대 청소년의 이야기였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선처를 구했고 유가족들은 직접 방문해 사과한다면 받아주겠다고 했다. 어머니와 그곳에 들른 그의 사과에서 진정성은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한번 분향소에 들르라고 권했고 분향소에 들렀다가 다시 유가족을 찾아온 그는 울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죽어간 또래 친구들의 이름과 얼굴 하나하나를 보았다. 지금까지 접하던 소식과는 달랐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깨달았다.
언제부터 세월호 참사에 관한 비방글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교통사고나 에이아이(AI), 물고기밥 등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 이어졌다. 유가족들이 보상금과 특혜를 챙기려 한다고 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그런 악플들보다 더 아픈 것이 이제 지겹다, 언제까지 세월호 타령이냐, 이제 그만해라 라는 말이라고 했다.
악플 중에는 미국의 9·11 테러와 비교하는 글들도 있었다. 3000명이 죽었는데도 그들은 이렇게 길게 질질 끌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무역센터 자리에는 추모공원이 건립되어 있다. 그곳의 분수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사람들은 그곳을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들러 그들을 추모한다. 기억하기로 우리의 경우에는 아직까지 희생자들의 명단이 한곳에 실린 적도 없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실시간으로 우리는 많은 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나 진실에 다가갔을까. 이미지는 부풀려지거나 축소되며 왜곡된다. 그리고 그것은 철저히 타인의 고통에 머문다. 방대한 이미지의 숲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은 그 청소년뿐만이 아니다.
하성란 소설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