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빈 논설위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얼마 전 사석에서 ‘메시지 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정부가 경제 상황을 너무 안 좋게 말하면 투자나 소비 심리가 과도하게 위축되고, 낙관적인 얘기를 하면 경제주체들의 긴장감이 풀어져 정책 추진 동력이 떨어진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상황과 경우에 따라 낙관적이기도 하고 비관적이기도 한 메시지를 던진다. 달리 말하면 경제 상황에 대한 정부의 진단과 전망이 오락가락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경제와 관련해 오락가락하는 메시지는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에서 잘 보여줬다. 기자회견 내용을 꼼꼼히 뜯어보면 앞뒤 말이 여러 곳에서 서로 어긋난다. 정부 정책의 성과를 평가할 때는 한국 경제가 순항 중인 듯 말했다. “지난해 우리 경제 성장률이 4년 만에 세계 경제 성장률을 앞지른 것으로 추정되고…”라든가,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도 수출액과 무역 흑자, 무역 규모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등 트리플 크라운을 2년 연속 달성했다”라는 평가가 그렇다.
그런데 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와 성원을 호소하는 대목에선 경제가 침몰 직전의 배처럼 위태롭다. 대통령의 진단에 따르면,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부문의 구조개혁이 차질을 빚을 경우 경제는 헤어나기 힘든 깊은 수렁에 빠진다. 그래서 ‘경제를 살리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다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올해 기자회견에서 밝힌 경제정책 구상은 지난해와 별로 다를 게 없다. 얼개만 보면 지난해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복사판이다. 다만 대통령이 지난해보다 좀더 강하게 의지를 실은 정책이 있다. 규제 완화와 부동산시장 활성화다.
박 대통령은 규제 완화와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내수경기 침체를 벗어날 핵심수단으로 내세웠다. 잘못된 진단에서 나온 위험한 처방이다. 경기침체는 수요가 공급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내수가 살아나려면 무엇보다 민간소비가 회복되어야 한다. 하지만 소비 주체인 가계의 소득은 몇 년째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데다 부채는 위험수위를 넘어 계속 불어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부동산시장 활성화는 가계부채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또한 가계나 정부의 부채 확대를 통한 경기 띄우기는 미래 불확실성을 키워 기업의 투자마저 위축시킨다.
우리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경기침체의 장기화가 우려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다. 기업과 가계, 고소득층과 중하위층 등 각 부문의 불균형 심화가 원인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한국의 소득불평등 확대가 경제성장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보고서를 최근 냈다. 반면에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전혀 다른 인식을 보여줬다. ‘고질적인 규제’가 “내수 부진과 저성장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초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3년 뒤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 4%를 달성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임기 말인 2017년에는 적어도 4%대의 경제성장률을 보여주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셈이다. 그런데 올해 기자회견에선 이 약속이 슬그머니 이렇게 후퇴했다. “(정부 계획이 차질없이 추진되면) 우리 경제는 잠재성장률 4%로 나아가는 경제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언뜻 비슷한 것 같지만 구체적인 목표 달성 시기를 연장해버렸다. 자신이 없으니 적당히 모면하려는 수사로 볼 수밖에 없다. 무릇 말로써 흥하기를 바라지 말고 말로써 망할 것을 두려워하라고 했다. 헛된 바람으로 메시지 관리나 신경을 쓸 때가 아니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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