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정부의 세제 개편안이 발표된 이후 세금 부담 증가에 대한 중산층 봉급생활자들의 우려가 큰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세제 개편안은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에 유리했던 소득공제 방식을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함으로써, 소득계층 간 형평성을 높이고 대기업 등에 대한 과도한 세제지원을 축소함으로써, 세원을 넓혔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저소득 서민계층의 경우 오히려 세 부담이 줄어 소득재분배 효과까지 발생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은 상당히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그간 성실히 세금을 납부해온 유리지갑 중간소득계층 샐러리맨들에게 부담이 지나치게 증가한다면 이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새누리당 원대대표로 있던 지지난해 8월9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연말정산 파동을 낳은 2013년 세제 개편안에 대해, 큰 틀에서 높게 평가하면서 중산층 봉급생활자들의 부담이 급격히 커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최 부총리 얘기대로 세제 개편안은 나흘 뒤 일부 수정됐다.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의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뽑는 수준으로 한 게 이번 세제 개편의 정신”이란 발언 등이 겹치며 여론이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3450만~5500만원(총급여) 소득자의 근로소득세가 늘어나지 않고, 5500만~7000만원의 경우 2만~3만원 증가하는 형태로 원래 개편안보다 세 부담을 줄였다. 이런 세법 개정안은 최 부총리의 지휘 아래 그해 연말 국회를 통과했다.
그로부터 1년여 뒤, 이번에는 연말정산 파동이 빚어졌다. 2013년 8월보다 시중의 분위기는 훨씬 더 좋지 않다. 새누리당이 ‘이러다간 선거에서 다 진다’며 정부를 압박하고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30%로 급락한 게 이를 뭉뚱그려 말해준다. 결국 최 부총리는 새누리당 요구를 받아들여 자녀 세액공제 등의 폭을 확대하는 동시에 소급해서 적용하기로 했다. 애초 정부가 내세운 세법 개정의 취지를 뒤흔들 정도다. 최 부총리가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박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해야 했다.
최 부총리는 새 세법이 이렇게 큰 파장을 부를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아무래도 아닐 것 같다. 그랬으면 국회 처리 과정에서 내용을 좀 더 손보거나, 부총리 취임 뒤에 보완조처를 취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게 또 다른 시비를 부를 수 있어서 그냥 넘어갔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최 부총리로서는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 경제 현실도 생각만큼 호전되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을 듯하다.
게다가 이번 파동으로 정부의 정책추진 동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세법 뒷걸음질이 여러모로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강조하는 공공·노동·금융·교육 부문 구조개혁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안 그래도 구조개혁 방향이나 방식에 문제가 많은 상황에서, 이해당사자들이 정부 방침에 순순히 호응할 리가 없다. 박근혜 정부의 위기이자 나라 전체로도 악재다.
이참에 최 부총리가 타개책을 마련하는 데 한몫을 해주면 좋겠다. 연말정산 파동이 증세 논의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도록 물꼬를 트는 구실이다. 현행 세제가 날로 늘어나는 재정수요를 감당하고 재분배 효과를 높이기에 힘이 달린다는 사실은 두말하면 군소리다. 증세를 전제하는 게 불편하다면 전면적인 세제 개편 논의를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 부총리가 박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설득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번 파동에 책임이 작지 않은데다 ‘친박 실세’로 평가되고 있으니 그럴 의무와 여지가 있다고 본다.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으면 난국을 풀 길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경 논설위원 jaewoo@hani.co.kr
이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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