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란 소설가
큐레이터이자 수집가인 이데사 헨델스에 대해 알게 된 것은 2010년 광주 비엔날레에서였다. 그녀는 전세계 3천여 명의 사람들이 테디 베어를 안고 사진을 찍은 ‘테디 베어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 중 단연 눈길을 끈 것은 ‘타이타닉 테디 베어’였다.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로 목숨을 잃은 492명을 위로하고자 미국의 한 독지가가 492개의 테디 베어를 만들어 유가족에게 전달했는데 그중 한 유가족이 테디 베어를 안고 찍은 사진이 공개된 것이다.
그해 광주비엔날레의 주제가 <만인보>였다는 것을 떠올리면 더욱 그 의미가 깊어진다. 그 ‘만인보’는 고은 선생의 서사시 <만인보>를 차용해온 것이다. 1980년 투옥되어 창 하나 없는 독방에서 수감 생활을 하면서 선생은 지각 능력을 보존하기 위해 자신의 생애에서 만난 사람들을 묘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대상이 민중과 소외된 군상들이라는 것이 특징인데 인물 하나하나의 성격과 특징을 잘 이끌어냄으로써 애환은 물론이고 삶에의 의지까지 드러나고 있어 감동적이었다. 얼마 전 선생은 한 인터뷰에서 “애도가 길어야 한다”는 자크 데리다의 말을 인용하면서 세월호 이야기를 꺼냈다. 하루이틀 생각하다 자기 삶으로 돌아서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 결국은 죽은 자, 지금 없는 자들을 위해 쓰는 것이라고, 이 죽음들을 하나하나 현재화시키는 것 역시 애도라고 했다.
미국의 작가 폴 오스터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그는 장편 <브루클린 풍자극>에서 주인공 네이선의 입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풀어놓는다. 심장마비로 쓰러진 네이선이 다시 병원을 나서게 되는 시간은 2001년 9월11일 오전 여덟 시로, 세계무역센터의 북쪽 타워에 첫 번째 비행기가 충돌하기 딱 46분 전이다. 두 시간 뒤에 3천 명을 재로 만든 검은 연기가 브루클린 쪽에서 밀려오고 죽음의 하얀 재가 모두의 머리 위로 쏟아져내릴 것을 모른 채 네이선은 어느 누구 못지않게 행복하다.
9·11에 관한 언급은 두툼한 책의 분량 중 마지막 몇 줄에 불과하지만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어온 소설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요한 장면이다. 그가 곧 보게 될 장면은 그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신뢰들을 뒤흔들 것이고 그가 원하는 평화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네이선은 이름 없는 사람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실, 기록이 사라지기 전에 전기로 남겨두자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충격은 결코 극복될 수 없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되살리고 싶어할 것이고 네이선은 글로 그 사람을 소생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그 책은 모든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남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창비에서 발간한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큰 의미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부모 열세 명의 인터뷰를 싣고 있다. 열세 명의 작가기록단이 글을 쓰고 여덟 명의 만화가가 그림을 그렸다. 작가들은 유가족들이 있는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해왔다. “참사의 증거를 남기고 흩어지는 고통을 사회적 기억으로 남기자는 각오”에서였다.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지난했을지 충분히 공감이 간다.
이 책은 “남겨진 가족들이 가닿을 수 없는 수백 개의 금요일에 관한 기록”이다. 각각의 유족들에게 보내는 애도이며 “전대미문의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닌 뛰어난 기록문학”이다. “하루이틀 생각하다 자기 삶으로 돌아서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용한 기록물이 될 것이다. 네이선의 말처럼 “우리는 절대로 책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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