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복지 논쟁, 제대로 해보자 / 박순빈

등록 2015-02-05 20:31

박순빈 논설위원
박순빈 논설위원
새누리당 지도부가 ‘증세 없는 복지’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 기조를 ‘거짓’이라고 선언했다. 박 대통령의 복지 공약을 여당이 수술대에 올린 상황이 됐다. 복지 논쟁에 불이 붙은 것이다. 생산적 논쟁으로 이어지려면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가는 게 좋겠다.

먼저 박근혜표 복지 공약의 파산에 대한 책임 소재는 분명히 가리고 가자. 부실 공약의 재발 방지와 정책 신뢰의 회복을 위해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3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러한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국민을 속인 정치인은 누굴까? 김무성 대표가 지난해 2월 대한변호사협회 초청 강연에서 한 발언에 답이 들어 있다.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인데 (대선 때) 참모들이 써준 공약을 그대로 읽었다. 그런데 당선되고 보니 돈이 있어야 주지. (중략) 정치인에게 국가재정건전성을 감안해서 공약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선 당선되고 봐야 할 것 아니냐.” 그러니까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후보 참모들이 표를 얻기 위해 재정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공약을 만들어 박근혜 후보에게 그대로 읽게 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당시 새누리당의 선거대책총괄본부장을 맡았다. 지금이라도 국민을 속인 데 대해 사과나 반성, 최소한 변명이라도 해야 할 ‘정치인’이 누구인지는 자명하다.

합당하고 객관적인 근거 제시도 복지 논쟁의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한다. 가령 과도한 복지 지출이 재정 파탄을 초래한다거나 복지 과잉으로 국민이 나태해진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여러 국제비교 통계와 연구분석 자료가 보여주는 현실에선 한국은 복지 후진국이다. 선진국은 물론 경제력이 비슷한 다른 나라에 견줘서도 복지 수준이 한참 떨어진다. 국민은 한 번도 온전한 복지 혜택을 누려본 적이 없는데 자꾸 복지 과잉론 따위를 되풀이하면 생산적 논쟁이 이뤄질 수 없다.

재정건전성 악화를 복지 탓으로 돌리는 것 또한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논리다. 고령화 추세로 복지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앞으로도 피할 수 없는 재정 여건의 변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 재정수지 악화는 지출보다 수입 쪽 요인이 더 크다. 무리한 감세정책으로 세수가 해마다 정부 예상치를 밑돌아 재정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조세 수입의 비중을 뜻하는 조세부담률을 보면, 2007년 19.6%이던 것이 2013년에는 17.9%로 떨어졌다. 정부는 이처럼 국민 조세 부담을 줄여주면 투자와 고용, 소득과 소비의 증가로 경제가 활성화할 것이라고 강변해 왔다. 하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성장 잠재력 하락에다 만성적인 세수 부족에 따른 재정건전성 악화다.

마지막으로 제시하고 싶은 원칙은, 증세냐 복지 축소냐는 식의 이분법적 접근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이분법적 논쟁 틀 안에서는 아무런 성과를 낼 수 없다. 복지를 비용으로만 보면 ‘증세 없는 복지’의 대안을 찾기 어렵다. 우선 국가가 기본적으로 담당해야 할 복지 영역에서부터 합의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보육과 교육이 바로 그런 영역이다. 아이 키우기의 ‘국가 완전책임제’는 박 대통령이 원고도 없이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헌법 10조에는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 있다.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라는 뜻이다.

우리 경제의 규모와 체질을 고려하면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성장으로 복지 재원을 꾸준히 제공하고, 건강한 노동력의 재생산 등에 필요한 든든한 복지로 성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복지는 생산적 투자가 될 수 있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