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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마당가에 매달아놓은 게 / 이순원

등록 2015-02-06 18:37

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요즘 전화기라는 게 참 여러 가지로 편리하다. 누군가와 얘기할 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기능을 전화기를 통해 해결한다. 얼마 전까지 컴퓨터로 주고받던 이메일도 대관령 산행 중에도 핸드폰으로 다 처리한다. 예전 같으면 신문을 펼치고 라디오를 틀어야만 들을 수 있는 세상 소식과 텔레비전 앞에 앉아야만 볼 수 있는 드라마도 휴대전화기 하나면 다 해결된다. 어떻게 보면 참 간단하고도 살기 편한 세상이다.

그중에 내가 휴대전화기로 자주 확인하는 것이 오늘의 날씨다. 외출할 때도 확인하고 그냥 집에 있을 때도 확인한다. 오늘은 기온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바깥 날씨가 춥지는 않은지, 눈이나 비가 오지는 않는지 확인하면 지금 당장의 날씨와 기온뿐 아니라 내일과 모레, 다음주 날씨까지도 알려준다.

어릴 때는 그걸 집안의 어른들이 짐작으로 알려주었다. 그냥 막연한 짐작으로만이 아니라 오랜 경험으로 내일 비가 올지 눈이 올지 알려주었다. 우리 어린 시절 할머니는 게를 먹은 다음 안방 문 앞 처마 끝에 게딱지 두 개를 서로 등을 맞대어 매달아놓았다. 커다란 집게발을 가진 게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악귀를 쫓는다고 했다. 게가 악귀를 쫓는지는 알 수 없어도 할머니는 방안에 앉아 게딱지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마당을 지나가는 바람의 말을 듣고 그들이 가는 길과 양과 세기를 짐작했다.

때로는 놀랍게도 방안에서 게딱지 소리만 듣고도 어느 바람이 비를 몰고 올 바람인지 그냥 지나갈 바람인지 가려냈다. 할머니에겐 깊은 바닷속에 살던 게가 허공을 가르는 바람의 전령사이자 구별사였다. 이따금 마루로 올라와 방안을 기웃거리는 개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하듯 게딱지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에게도 그가 온 길의 소식을 묻고, 그 바람이 별다른 행패 없이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웅얼웅얼 기도하듯 전했다.

그 자리에 한옥을 허물고 새로 지은 집은 처마가 없는 집이었다. 처마가 사라진 다음 지금은 예전의 할머니보다 더 나이 든 어머니가 게를 먹고 나서 이따금 게딱지를 마당가 자두나무에 매달아놓는다. 어머니가 게딱지를 매달아두는 자두나무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다른 집 울 밖에 선 과일나무를 부러워하지 말라고 일부러 친정에서 묘목을 구해와 심은 아주 오래된 나무이다.

어머니가 마당가의 여러 나무 중에 자두나무에 게딱지를 매다는 것도 그것이 할머니가 심은 나무이기 때문일 것이다. 게를 매달아놓은 지 오래되어 색이 바래면 아버지가 새 게딱지로 바꾸어 달아주었다. 그런 할머니의 아들도 이태 전 가을 여든네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에도 게딱지 두 개가 자두나무 가지 사이로 푸른 하늘을 바다 삼아 헤엄치듯 바람에 몸을 맡기고 놀았다.

이제는 그 일을 어머니의 아들들이 해준다. 그러나 어머니는 예전 할머니보다 더 나이가 들어도 게가 전하는 바람의 소리를 들을 줄 모른다. 어머니도 우리처럼 텔레비전에서 전하는 날씨정보로 오늘의 날씨와 내일의 날씨를 듣고 추운데 감기 조심하라고 아들들에게 전화한다.

예전 할머니처럼 게가 전하는 말을 듣지 못해도 어머니는 여전히 마당가 자두나무에 게딱지를 매달아놓는다. 아마도 거기엔 바람이 어머니에게 전하는 말보다 어머니가 바람결에 누구에겐가 전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이 담겨 있을 것이다. 곧 설 명절이 다가온다. 어쩌면 이번 설 명절에 게딱지를 바꾸어 달고 올지도 모른다. 어머니를 위해 오래 그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사람 모두 편한 설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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