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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박 대통령 생각대로 된다면야 / 이경

등록 2015-02-17 19:08수정 2015-02-17 22:13

박근혜 대통령이 대단하긴 대단하다. 증세와 복지를 둘러싼 잇따른 논쟁에서도 ‘증세 없는 복지’라는 자신의 정책기조를 굳게 지키고 있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물론, 여당에서조차 ‘증세 없는 복지’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나오는데도 터무니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태도다. 증세는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란 말까지 했다. 사실상 박 대통령을 겨냥해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러한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정치인이 인기에만 영합하면 그 나라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은 아르헨티나와 그리스의 사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라고, 국회 대표연설에서 목소리를 높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머쓱하게 됐다. 박 대통령의 소신에 찬 직무수행은 그 자체로 평가할 대목이 있다. 지도자가 여론에 너무 휘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신도 소신 나름이다. 소신의 바탕이 되는 논거가 잘못됐거나 약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박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 발언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든다. 박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가 되면 세수가 자연히 더 많이 걷히게 되는데,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모두가 최선을 다했느냐,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세수가 부족하니까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된다 하면, 그것이 우리 정치 쪽에서 국민에게 할 수 있는 소리냐, 이것은 항상 제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경제가 활성화하면 세수가 저절로 늘어날 테니 따로 증세할 필요가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여기서 증세는 세목 신설이나 세율 인상을 가리키며, 연말정산 파동을 빚은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 등은 제외)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박 대통령 말대로 경제가 활성화하면 세수는 늘어날 수 있다. 거래가 많아지고 가계와 기업 소득이 높아지면 여기에 일정 세율을 곱한 세수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성장률이 높아지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세수 증가에도 한계가 있다. 특히 급증하는 복지 수요를 충당하기에는 구조적으로 힘이 달릴 수밖에 없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복지제도가 확충될 때의 상황을 봐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미국과 영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이 한때 90%대에 이른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당장 경제를 활성화하기도 쉽지 않다. 정부가 여러 부양책을 펴고 있지만 경제는 기대만큼 활기를 띠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규제완화에 속도를 낸다고 해도 사정이 크게 달라지기는 어렵다. 구조개혁은 반대로 한동안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세수가 지난해까지 3년째 목표에 미달했고 올해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재정건전성 확보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경제 활성화를 통한 세수 증대 방안이 ‘증세 없는 복지’의 논거가 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이경 논설위원
이경 논설위원
박 대통령은 국민을 의식한 말을 많이 하고 있다.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민을 배신하는 것” 말고도 “국민에 대한 도리”, “국회에서 이런(=증세 관련) 논의가 국민을 중심에 두고 이뤄져야” 등의 말을 했다. 새해 기자회견에서는 “저는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 오직 국민 여러분과 대한민국의 앞날만을 위해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라고도 했다. 이런 말을 정치적 수사라고만 보고 싶지는 않다. 다만, 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다면 공허한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거둬들이고 이제는 ‘증세를 통한 복지’ 기조를 받아들이는 게 좋겠다. 그래야 많은 국민들이 질 높은 복지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할 때다.

이경 논설위원 jae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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