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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대통령 패션과 기삿거리 / 박순빈

등록 2015-03-03 18:50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념식은 조촐해 보였다. 청와대 직원 조회에 참석해 3분가량 연설하고 직원 대표에게 선물 받고 사진 찍은 게 전부였다. 다음날 여러 신문에선 박 대통령의 패션을 비중 있게 다뤘다. 취임식 때와 비슷한 옷차림으로 등장한 것을 두고서 초심을 회복하자는 대통령의 의지와 각오가 담긴 것으로 풀이했다. 과연 그런지 궁금해 청와대 출입기자에게 물어봤다. 대답은 의외로 싱거웠다. 쓸 만한 내용이 없어서 일부 기자들이 대통령 패션에 눈길을 뒀던 것일 뿐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참 친절한 기자들을 가까이 두고 있다.

박 대통령의 초심은 2년 전 취임사에 잘 녹아 있다. 대통령은 ‘국가발전과 국민행복이 선순환하는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 주요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했다. 첫째가 “경제 부흥을 이루기 위해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해 가겠다”였다. “노후가 불안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 될 때 국민행복 시대는 만들어진다”며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도 내세웠다. “대한민국 어느 곳에도, 그 누구라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정부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취임사에 담긴 대통령의 이런 약속과 다짐은 지금 어떻게 됐나? 경제 관련 공약만 보더라도 흐지부지되거나 실종됐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먼저 경제민주화부터 살펴보자. 경제개혁연구소가 최근 낸 경제민주화 공약의 이행 점검 보고서를 보면, 입법 기준 공약 이행률은 고작 26.5%에 머물고 있다. 그것도 취임 후 1년 동안만 정부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그 뒤로는 관심조차 두지 않고 있다. 2014년 이후 정부·여당에서 새롭게 추진하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나 제도를 전혀 찾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의 입에서 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자취를 감춘 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공약을 까먹었거나 저버렸다고 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개념이 아리송한 창조경제는 어떤가. 취임사에서 대통령이 정의한 창조경제는 ‘기존 시장을 단순히 확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융합의 터전 위에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벌 대기업 위주의 성장전략과는 다른 길이어야 할 터이다. 그런데 정부는 시도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재벌들에 할당하고 있다. 대구·경북은 삼성, 광주는 현대차, 충북은 엘지, 대전은 에스케이 등에게 사실상 센터 지원을 맡겼다. 한마디로 재벌에 의존하고 재벌이 주도하는 산업 생태계를 전국적으로 조성하면서 창조경제를 구현하고 있단다. 지나가는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경제 부흥의 길도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4%대 잠재성장률 회복이라는 목표는 임기 안에 도저히 달성할 수 없게 됐다. 오히려 3%대 성장률조차 불안한 지경이다. 만성적인 세수 부족으로 정부의 경기 대응 능력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8년 이후에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4%대 중반을 유지하다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각각 한 단계씩 떨어지는 추세다.

   박순빈 논설위원
박순빈 논설위원
<논어>에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는 말이 있다. 기본을 세우면 길이 생긴다는 뜻이다. 정치적으로나 국내외 경제적 상황이 복잡하게 얽힌 때일수록 기본이 중요하다. 박 대통령에게 남은 임기 3년 동안의 기본은 초심에 있다. 패션에 신경 쓸 시간에 청와대 기자들과 직접 만나 대화라도 좀 해보시라.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대통령의 철학과 인식, 정책 구상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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