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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금강산 가는 기차를 타고 싶다 / 이순원

등록 2015-03-13 18:45수정 2015-03-13 18:45

지금도 한달에 한번 서울에서 어머니가 계시는 강릉으로 간다. 버스를 타거나 승용차를 타고 고향에 가다 보면 2018년 겨울올림픽 준비로 서울에서 강릉까지 새로 철도를 놓는 공사를 한창 진행하고 있다. 그것이 놓이면 봄가을 행락객이 붐빌 때에도, 한여름 피서철에도 길이 막혀 길 위에서 엉뚱하게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갈 때마다 조금씩 진척되는 철로공사를 볼 때마다 젊은 시절의 일 하나가 떠오른다.

지금부터 35년 전인 1980년. 그때 나는 스물네살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제대를 했을 나이에 뒤늦게 입대를 했다. 그때 이미 여든이 넘으신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섰다. 강릉에서 논산훈련소까지는 그날 입대하는 장정들이 모두 공설운동장에 모여 밤새 기차를 타고 갔다. 논산에서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은 곳이 강원도 인제 원통의 전방부대였다.

이따금 물자 보급 트럭을 타고 말로만 듣던 향로봉을 올랐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아주 먼빛으로 금강산을 바라보았다. 날씨가 맑은 날엔 맨눈으로 금강산의 형체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눈으로는 가깝지만 그 시절 나에게 그곳은 우리 땅이라기보다는 심정적으로는 참으로 먼 곳의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가 때 내가 금강산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근무를 한다고 말하자 다들 나의 전방 근무를 걱정했다. 여든이 넘으신 할아버지만 그곳이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전에 할아비는 작은할아비하고 두 형제가 여름마다 금강산에 갔었단다. 그때 할아비가 몸이 좋지 않아서 자주 휴양을 다니던 때였는데, 금강산으로 가는 것이 양양 오색약수에 가는 것보다 더 쉬웠던 시절이란다.”

정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싶어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셨다. “휴양을 떠나자면 저마다 경비로 쌀 두 가마니는 가져가야 하는데, 그때는 양양에서 금강산을 지나 서울로 가는 기차가 있었단다.”

실제로 양양 읍내에 기차역 자리도 있었고, 선로를 걷어낸 기찻길 제방도 있었다. 오색약수터로 가자면 양양 나루터에서부터 우마차를 이용하거나 저마다 짐꾼 셋의 품을 이틀 꼬박 빌려야 하지만 기차를 타면 바로 금강산 온정리 온천까지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기차는 양양에서 금강산을 지나 원산으로도 가고, 또 원산에서 갈아타고 서울로 갔다고 했다.

정말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다. 선로를 걷어낸 다음 흔적만 남은 철둑길을 보면서도 그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해방이 되면서 삼팔선이 그어지고, 삼팔선 북쪽이었던 양양은 저쪽 땅에 편입되었다. 그때쯤 양양에서 강릉으로 연결되는 기찻길이 거의 완공 단계에 있었는데, 강릉과 양양 사이에 삼팔선이 그어지자 이제까지 작업했던 선로를 걷어냈다고 했다. 그리고 전쟁 후 양양이 남쪽 땅으로 편입되었을 때 다시 양양에서 휴전선까지의 선로를 걷어냈다는 것이다.

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일등을 한 소식을 들은 것도 강릉에서 원산으로 가서 원산에서 다시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라고 했다. 서울과 강릉 사이에 새로 놓는 철로 공사를 볼 때마다 옛날처럼 저렇게 강릉에서도 금강산으로 바로 갈 수 있는 철도를 놓고 그 철도를 타고 금강산으로 갈 수는 없을까,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돌아보니 우리의 슬픈 역사와 전쟁이 있던 길도 막고, 있던 길도 없앤 것이었다. 새로 서울~강릉 간 철로 공사를 보며 언젠가는 그런 식으로 기차를 타고 금강산에 갈 날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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