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막히는 도로에선 종종 리콴유를 생각한다. 한번도 가본 적 없지만 싱가포르에선 차 막히는 일이 없다고 한다. 차량 대수가 법적으로 제한돼 있어 소유 허가를 획득해야만 차를 살 수 있기 때문이란다. 허가증은 차 값과 맞먹는 액수인데 10년이 시한이라고 들었다. 자가용 몰고 나타나면 단박 부자 대우를 받는 건 그 때문이란다. 그야말로 차 살 돈 있다고 함부로 차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닌 게다.
전화 회선이 부족해 가입 자격을 제한했던 1960~70년대 한국을 떠올리면 혹 비슷할까.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묻는다. 그 방법은 어때? 끝없이 차량 대수가 늘어나고 한없이 도로도 늘어나는 대책 없는 자유주의보단 그편이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특별소비세류의 세금 간섭이 없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제한을 제도화해 버리는 편은 어떨까? 내 차가 없는 대신 도로는 늘 쾌적하다면.
잘 알려진 별명마따나 리콴유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체현해 놓은 인물 같았다. 능력 있고 단호하고 독재적이었다. 부강하고 도덕적인 국가라는 분명한 청사진을 갖고 있었고 방해자들엔 가차없었다. 싱가포르가 태형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인구당 사형집행률도 1위다. 리콴유는 사람들이 자유를 원한다는 건 오해라고 종종 말하곤 했다. 인간이란 전체를 위해 헌신할 수 있을 만큼 위대한 존재가 아니라고도 했다.
그가 옳을 게다. 언론의 자유보다 취업과 치안과 질서가 중요할 게다.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는 순간이 인생에서 대부분일 게다. 리콴유에게 다른 생각의 갈래가 없었을까마는, 그는 “지도자란 문제를 공유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들을 격려하는 자리”라고 토로하곤 했다. 리콴유는 앞서 고민하고 대신 결정하고 망설임 없이 추진했다. 그런데도 지지율이 60% 아래로 떨어져본 적이 없다니, 놀랍다.
만약 선거에서 패배했다면 리콴유는 어떻게 했을까. 승복했을까, 아니면 수는 적지만 강력하다는 군대라도 동원했을까. 그의 ‘아시아적 가치’는 쿠데타까지 용인할 만한 것이었을까. 다행히 그런 문제를 시험할 만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는 31년간 싱가포르를 제 뜻대로 만들어 갔고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변치 않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싱가포르를 방문해본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며 말한다. 인공도시 같다고. 듣던 대로 길바닥에 쓰레기 하나 없더라고.
리콴유 사후 싱가포르는 어디로 갈까. 반세기 동안 그를 지지해준 국민들이 있었으니 ‘아시아적 가치’는 앞으로도 굳건할까. 싱가포르 모델은 인간에 대한 익숙한 명제를 부정하는 모델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없고 인간은 본래 자유로운 존재이며 인간의 마음은 어둠을 드리우기 마련이라는데, 싱가포르형 인간은 그렇지 않단다. 그런 낌새가 보일 때마다 꼬리를 잘라내다 보니 절반쯤은 꼬리가 퇴화해버린 형상이랄까.
규모가 작기 때문일까. 이웃의 말레이시아나 중국으로 건너가 금지된 요구를 해소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인가. 싱가포르에는 공식적 성매매가 없는 대신 이웃나라 매춘업에서는 싱가포르인이 중요한 고객이라고 한다. 어둠과 반면은 없을 리 없다. 전가하고 팔아넘기기라도 해야 한다. 근대 민주주의의 역사란 그런 부정성과의 대면으로 점철돼 있는 과정이 아닌가. 우리가 겪고 있는 것도 우리 자신의 무지, 비겁, 무관심과 난폭을 마주보고 이겨내려는 과정이 아닌가. 리콴유는 죽기 얼마 전 한국을 걱정했다지만, 한국과 싱가포르는 뒤집힌 거울상 같기도 하다. 리콴유, 이제야말로 배우고 토론할 일이 많았을 텐데.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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