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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길 위에서 즐겁게 공부하기 / 이순원

등록 2015-04-10 18:39수정 2015-04-10 18:39

공부라는 것은 대체 몇살까지 어떻게 해야 할까. 공부도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 있을까. 요즘 산에 들에 꽃이 피고, 놀이 삼아 운동 삼아 주말에 걷기운동을 나간다. 집 주변 산책로를 걸어도 좋지만, 멀리 차를 타고 강릉바우길 트레킹에 나설 때도 많다. 그곳에 가면 토요일마다 많은 사람들이 걸으러 나온다. 일부러 부르지 않아도 100명도 나오고 200명도 나온다. 그냥 하루종일 산길과 들길과 바닷길과 호숫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3년 전 강릉의 한 고등학교 중국어 선생님이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왔다. 토요일마다 나와서 걷다 보니 어느새 강릉바우길 17개 구간을 다 걷게 되고, 학생들과 또 중국에서 온 원어민 선생님들도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 중국어 선생님은 자신이 길 위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실제로 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재능기부를 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 전직 경찰관은 지피에스 장비를 이용해 자신이 먼저 걸은 강릉바우길 17개 구간의 걷는 길 지도를 만들었다. 그러자 지역의 한 대학 컴퓨터 관련 학과 교수와 학생들이 그걸 바탕으로 ‘바우길 앱’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려놓아 누구라도 무상으로 그걸 내려받아 길잡이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처럼 처음 길을 걷는 사람이라도 안전하게, 또 안심하고 걸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또 강릉의 한 대학은 교정을 개방해 학교에서부터 경포대와 경포해변까지 나가는 걷는 길을 탐사하여 시민들에게 제공했다. 이 길을 걷는 날이면 교수와 학생들이 시민들과 함께 걸으며 학교를 소개하고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역의 고등학교들도 ‘바우길 걷기 동아리’를 만들어 자기 학교가 있는 지역을 통과할 때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나와 안내한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걷기에 참석하게 되고, 도착지에서 처음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는 교통편의 불편을 느끼자 지역의 한 버스회사가 스스로 시민의 발이 되어 도착지에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출발지로 시민들을 모셔준다.

이런 모습을 본 중국어 선생님은 여러 고등학교를 한데 묶어 ‘바우길 중국어연합동아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길을 걸으며 원어민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길 위에서 즉흥적으로 회화 공부를 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아 강릉을 무대로, 또 바우길 각 구간 위에서 나눌 수 있는 중국어회화 전문 교재를 만들었다. 강릉지역의 한 수필가가 강릉지역을 배경으로 교재의 초안을 만들고 그걸 중국어 선생님과 원어민 선생님들이 중국어회화 교재와 함께 음성파일로 만들어 올렸다.

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처음엔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회화교실로 출발했는데, 길 위에서 학생들이 원어민 선생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보고 시민들도 함께 공부하고 싶다고 교실 확대를 청했다. 처음엔 30명쯤으로 시작했는데 점차 늘어 50명도 넘는 시민들이 매주 두 시간씩 방송대학 학습관에서 강릉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중국어회화 공부를 하고 있다. 교실에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음성파일을 만들어 올리고 있는데, 강원외국어교육원에서 시민들도 이용할 수 있게 로그인 후 ‘사이버학습’을 클릭하면 바로 ‘강릉바우길 중국어연합동아리’로 들어갈 수가 있다.

2018년 평창과 강릉에서 겨울올림픽이 열려서만이 아니다. 길 위에서 계절마다 자연과 함께하고, 또 어른이 되어 이렇게 공부를 한다는 것, 그것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큰 즐거움 중의 하나가 아닐까.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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