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80 대 8600000’. 메마른 기호인 숫자에도, 때론 감정이 묻어난다. 그 숫자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을 뜻하거나 고단한 삶의 무게와 포개질 경우 특히 그렇다. 얼마 전 공개된 2014년도 국내 대기업 임원 보수 자료도 누군가에겐 그랬다.
시행 2년째를 맞는 임원 개인별 보수 공개 제도는 여전히 반쪽짜리다. ‘연봉 5억원이 넘는 등기임원’으로 대상이 제한돼 있어서다. 설령 연봉을 공개했다 치더라도 논란거리는 꽤 많다. 대표적인 게 보수 산정 기준의 모호함이다. 달랑 ‘회사의 발전을 위해 리더십을 발휘한 점’이라는 문구가 10억원 넘는 상여금을 받은 이유로 적혀 있기도 했다. 참 ‘통 큰’ 회사다.
이러다 보니 재벌 총수를 비롯한 주요 임원들의 보수 수준이 과연 적정한지에 대해선 내내 의문부호가 따라다닌다. 지난해 가장 높은 연봉을 받은 인물은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다. 정 회장은 현대차 57억2000만원, 현대모비스 42억9000만원, 현대제철 115억6000만원 등 계열사 3곳에서 모두 215억7000만원을 받았다. 2013년(140억원)보다 70억원 이상 늘어난 액수다. 정 회장의 연봉은 제너럴모터스(GM)의 여성 최고경영자(CEO)인 메리 바라의 연봉 1440만달러(160억원)를 웃돌았다. 영업이익이 현대차에 뒤진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의 최고경영자 세르조 마르키온네는 3800만달러(420억원)나 챙겼으니 정 회장으로선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과연 경영자는 얼마만큼의 보수를 받는 게 적정할까? 아니 정당할까? 주류경제학 교과서의 표준적인 정답은 ‘영업이익이나 주가 등 다양한 경영실적에 좌우된다’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불충분할뿐더러, 제 보수를 제 맘대로 정하는 현실과도 동떨어져 있다. 더군다나 모든 가격이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있으니, 바로 최저임금이다. 많은 나라들이 앞다퉈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배경은 국가가 나서 일정 수준 이상의 삶(소득)을 보장하는 게 그 사회의 존립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깨달음에 있다.
임금에 하한선을 두는 최저임금제가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면, 그 반대의 경우라고 해서 가능하지 말란 법도 없다. 예컨대 경영자 연봉이나 최고임금에도 일정한 상한선을 두는 방식 말이다. 실제로 역사적 경험도 있다. 1차 대전 당시엔 10만달러 이상의 소득에 100% 과세하는 방식으로 최고임금제를 입법화했고,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0년대엔 체제 유지를 위해 소득 상한선을 두기도 했다. 중요한 건, 시장원리에서 다소 벗어난 최저임금제와 최고임금제 둘 다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체제 자체를 지탱하기 위한 제도적 산물이라는 점이다. 도덕이나 윤리의 가르침이 아니라 ‘필요’에서 비롯된 합리적(!) 결론이다.
현행 최저임금(시급 5580원)을 연소득으로 환산(주당 40시간 기준)하면 1400만원 남짓 된다. 단순셈법으로 정 회장의 지난해 연봉은 최저임금 노동자의 1540년치 연봉에 해당한다. 정 회장의 시급이 860만원이란 뜻도 된다. 우리 사회의 두 얼굴이다. 때마침 <뉴욕 타임스>는 4월12일치에서 미국 경제정책센터에 의뢰해 자체 계산해본 결과 1965년 20배이던 미국 내 경영자 보수와 직원 평균 연봉 격차가 2013년 296배로 치솟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대표 공약은 ‘줄푸세’였다.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는 뜻이다. 어쩌면 눈앞의 현실은 ‘띄우고(최저임금) 누르는(최고임금)’ 정책 패키지가 더욱 쓸모있고 현실적이라고 소리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머지않아 불평등의 대가를 혹독히 치르지 않으려면 그 방법이 외려 싸게(!) 먹힌다고.
최우성 논설위원
최우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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