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이 더 어릴 적 “엄마, 유령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라고 물어오면 “우선 인사를 잘해야지”라고 답하곤 했다. 엄마도 안 만나봐서 모르겠는데, 보통은 못다 푼 일이 있고 못다 한 말이 있어서 나타난다고 하더라구. 혹시 말을 걸어오면 잘 듣고. 아니, 먼저 말을 걸 건 없어. 근데 아마 평생 만나지 못하기가 쉬울 거야.
유령이 있다고 믿느냐고? 있다고도 없다고도 믿지 않는다. 인간과 합리성 너머 미지의 세계가 크나크다고만 생각한다. 종교, 철학, 천체물리학─ 그 미지의 세계에 접근하는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사상이나 학문으로 정돈할 수 없는 경우도 너무나 많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괴담을 통과했던가.
“원래 이 자린 공동묘지였거든.” 초등학교마다 이런 속삭임이 따라다녔다. 밤 열두시 주문을 외우면 분수대 물이 갈라지면서 계단이 나타난다고 했고, 과학실에선 인체모형이 걸어다닌다고 했으며, 차츰 학교의 비밀 100가지를 다 알게 되면 그때는…. 중학교 때는 화장실에 아이 시체가 버려져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고등학교 때는 강당 계단참에 유령이 출현한다고들 수군거렸다.
<여고괴담>의 리얼리티랄까. 고독과 소외와 원한과 분노는 당연히 유령을 부른다. 가끔은 갈망이, 그리움이 환상을 끌어낸다. 미국 남부 흑인 노예들 사이에선 하늘을 날아 아프리카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곤 했단다. 목화밭에서 일하던 노예들 사이로 마법의 주문이 전달되어, 감독이 헛되이 채찍을 휘두르는 가운데 다 함께 손잡고 고향을 향해 날아올랐다고.
1차 대전 전후엔 세계적으로 심령술이 유행했다. 도로시 세이어즈는 <맹독>에서 심령술 따위에 현혹되는 얕은 영혼을 비웃었지만, 추리소설계의 선배 격인 코넌 도일도 심령술에 깊이 빠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1차 대전 중 죽은 아들 때문이었다. “이제 영혼이 왔습니다.” 촛불이 흔들리고 탁자가 달그락거리고, 그리고 죽은 이가 영매(靈媒)를 통해 말을 하기 시작한다. “죽은 아무개입니까?” 똑. “아버지를 만나고 싶습니까?” 똑. “당신이 말한 편지는 서재에 있습니까?” 똑똑. 아니요.
1911년 멕시코 혁명을 이끈 마데로도 심령술에 심취했다고 전해진다. 그에게는 어린 시절 죽은 동생이 중요했다. 마데로는 동생의 순결한 영혼과 대화를 나누면서 금욕적 활동가로서의 삶을 실천해 갔다. 담배와 술을 끊었고, 소식을 실천했으며, 대통령이 된 후엔 권력을 휘두르기를 거부한 나머지 반혁명의 길을 열었다. 법과 도덕을 믿었던 이상주의자였던 그는 결국 반혁명군의 총알에 뒤통수를 맞고 죽었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작가 마르케스가 고향에서 듣고 자란 이야기들을 뼈대 삼았다고 한다. 이 세계에선 총 맞아 죽은 유령이 구석방에서 늙어가고, 수장됐던 영혼이 살아나고, 신성한 미녀가 이불보에 감싸여 승천한다. 시간이 착종되고 산 자와 죽은 자가 뒤엉킨다. 혁명 전후 쿠바를 기록한 <어느 도망친 노예의 일생>에서 화자 격인 에스테반은 주술과 마법이 일상사였던 노예 시절을 들려준다. 자기 자신 달걀을 이용해 악마를 부화시켜 본 적이 있다면서.
인간과 세계를 합리로만 다 설명할 수 없는 이상 낭만과 비합리라는 반동은 오히려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 세월이 유령을 품을 때가 있다. 1980년대 초 광주 일원에선 유에프오를 목격했다는 사람이 유난히도 많았다고 한다. 합리성이 오히려 환상적일 때 유령은 쉽게 돌아온다. 일상 속에서 기적을 이루는 기쁨, 현실 속에서 소망을 실현해 가는 환희가 멀어질 때.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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