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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오월은 푸르구나 / 하성란

등록 2015-05-01 18:39수정 2015-05-01 20:24

큰이모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혹시나 평소처럼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나 너무 아파 까맣게 타들어간 메마른 얼굴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영정 속 모습은 하나도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일어서려는데 문득 이제 이모는 평안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가슴을 짓눌러오던 고통에서 비로소 벗어나 이모는 평안하다. 눈물이 쏟아졌다. 다시 사진을 보니 까실까실한 천으로 지은 한복 차림의 이모는 아이 넷을 데리고 소풍을 갔던 때처럼 행복한 표정이다. 그 일이 있기 한참 전, 아이들이 어리던 어느 해 봄날처럼.

그 일이 없었다면 맏상주 자리에는 그 오빠가 있어야 했다. 어릴 적 두어 번 만났는데 껑충하던 키와 웃느라 둥글게 벌어지던 입 모양만 겨우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오빠가 세상을 떠난 건 채 스물도 되기 전이었다. 살아 있었다면, 며느리를 본 지금의 큰오빠보다 더 나이가 지긋할 것이다. 그때의 오빠보다 훌쩍 장성한 조카들이 검은 양복을 입고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난 4월 초,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면서 단원고 오십여명의 엄마아빠들이 삭발을 했다. 아직 아홉명의 실종자들이 돌아오지 못한 채 저 바다에 있다. 한 국회의원은 세월호 인양을 반대하는 여러 이유를 대며 자식은 가슴에 묻자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바리캉이 지나갈 때마다 흰머리가 섞인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떨어졌다. 충격과 슬픔, 고통이 많은 엄마아빠들을 병들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의 몸을 돌볼 여유가 없다.

희생자들의 보상 액수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뉴스로 올라왔다. 세월호 인양에서도 인양 비용이 먼저였다. 언제부턴가 엄마아빠들은 돈을 더 받아내려 농성하는 사람처럼 비춰졌다. 아니나 다를까 유가족들을 매도하던 일부 사람들은 보상금의 액수를 언급하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생명과 고통,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들이 한순간에 추락했다.

자식을 잃은 뒤 이모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나는 감히 짐작할 수가 없다. 꿈속에서 업고 있던 아이를 어딘가에서 잃어버리고 미친 사람처럼 울며불며 돌아다니다 깬 뒤, 꿈이라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지도 못한 채 먹먹해진 적이 있었다. 그때 아직도 이런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했을 이모를 떠올렸을 뿐이다. 이모는 평생 일만 했다. 어쩌다 찾아갈 때면 논밭이나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모를 볼 수 있었다. 근면하다는 생각보다는 뭔가 필사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모가 죽을힘을 다해 일하며 잊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왜 그렇게 죽자사자 일만 하는 거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것이 틈만 나면 찾아오는 아들 생각 때문이라는 것을, 아들을 잃은 것에 대해 자신을 벌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세월호 1주기가 속절없이 지나갔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평생과도 같은 시간이 흘러갔는데도 바뀐 것은 없다. 위로와 치료만으로도 부족할 시간에 그들은 거리로 나와 제발 자신들을 자식 잃은 부모로 봐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하성란 소설가
하성란 소설가
오래전 죽은 아들의 묘를 이장할 때 이모는 발버둥치면서 울었다. 얼마나 몸부림쳤는지 신발이 다 벗겨졌다. 삶아 빤 듯 희디흰 양말에 얼마 전 내린 비로 축축해진 땅의 붉은 흙이 묻었다. 그 흙 속에서 이모는 버둥거렸다. 목이 쉬어 울음소리도 나오지 않던 그 모습이, 점점 붉어지던 그 양말이 떠오른다.

오월이다. 푸르고 푸르러야 할 오월. 이제는 너무도 푸르러서 서러운 오월이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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