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생각하기엔 봄이 되어 피는 꽃이 더 많을 것 같은데, 봄이 가면서 피는 꽃도 만만치 않다. 그런 꽃을 밖에 나가서 보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직장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외출도 일주일에 고작 하루거나 이틀이다. 세상 풍경도 집안에서 창밖으로 살필 때가 더 많다.
한창 철쭉이 피기도 하고 지기도 하고, 새로 붉게 단장한 울타리처럼 덩굴장미가 피기 시작한다. 새빨간 장미 사이로 장미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찔레꽃 흰무리도 보인다. 꽃이 저토록 아름답고 화려하여도 그러나 오월 이맘때는 꽃보다 잎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하루가 다르게 나뭇잎이 퍼드러지고 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은 산으로 나물을 뜯으러 갈 때 산에 올라가서 나물을 보고 이제 뜯을 때가 되었구나, 아직 뜯을 때가 되지 않았구나 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마당가에 서 있는 밤나무와 상수리나무 잎을 보고 아직은 이르다, 늦다를 판단했다. 밤나무 잎이나 상수리나무 잎이 확 퍼드러져야 나물의 제철이 돌아온다. 초봄에 뜯는 두릅 말고는 어느 산나물이나 대개 그렇다.
참 이상한 것이, 날이 가고 달이 가는 것을 양력으로 계산하든 음력으로 계산하든 그것은 사람들의 헤아림이지 나무나 풀들의 헤아림이 아닌데도, 윤달이 든 해와 그렇지 않은 해는 나물 채취 시기도 며칠 왔다갔다 달라진다고 한다. 서울에 와서도 그런 걸 헤아리는 고향 사람들과 오랜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강원도 사투리 모임’ 사람들이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어쩌다 서울 가까운 곳에 살던 아이가 전학이라도 오면 우리는 우리가 쓰는 ‘강원도 말’이 표준말이고, 새로 이사 온 아이가 쓰는 ‘서울말’이 사투리인 것처럼 흉보고 놀리곤 했다. 그 아이가 자기가 쓰는 말이 표준말이라고 말하면 그걸 다시 트집잡아 놀렸다.
지금은 고향에 가도 초등학교 아이들이 우리 어릴 때처럼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억양이야 여전히 다른 지역과 차이가 있지만 예전에 우리가 쓰던 사투리 어휘를 쓰지 않는다. 학교교육과 집집마다 가지고 있는 텔레비전 때문이다. 어른들에게 말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에서 말을 배운다. 그래서 강원도 아이들조차도 어른들이 옆에서 해석해주지 않으면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나오는 사투리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예전에 우리가 쓰던 사투리가 점차 사라지는 게 아쉬워 고향 사람들끼리 사투리모임을 만들었다. 두세달에 한번씩 정기적인 만남도 갖고, 그때그때 예전에 쓰던 사투리가 생각나면 인터넷 카페에 그 말과 용례를 올리기도 한다.
틈틈이 고향의 말과 함께 고향 산천의 야생화 사진도 함께 올리는데, 여기에도 기가 막힌 추억의 공유가 있다. 봄의 들풀 가운데 빼어나기로 따지면 얼레지만큼 귀하고 멋진 꽃도 없다. 그런데 어릴 때 이런 얼레지조차 꽃이 피기 전 산에 가서 그것을 뜯어와 나물로 먹었다. 그런 얘기를 하면 도시 사람들은 “아니,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피는 걸 나물로 먹었단 말이에요?” 하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누가 지금 어떤 나물이 한창이라고 하면 그 나물을 핑계삼아 모처럼 고향 여행을 함께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산에 가서 직접 뜯는 나물은 아주 조금이고, 시장에서 사오는 나물이 더 많다. 그럼에도 매년 빠지지 않고 나물을 핑계삼아 고향에 가는 건 오래전에 떠나온 고향 산천과 그곳에 두고 온 유년시절의 추억이 그리워서일 것이다. 창밖을 바라보면 참 아름다운 날들이 풀잎과 꽃잎 사이로 지나가고 있다.
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