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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공짜 언어 / 김하수

등록 2015-05-17 19:01수정 2015-05-21 16:21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처음 마주치는 언어를 가장 쉽게 배운다. 부모가 전문적인 교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기들은 순탄하게 익혀 대여섯 살이 되면 그 말을 통달하게 된다. 그래서 그 언어를 어머니의 언어(모어)라고 한다. 한때는 모국어라고도 했지만 국가의 배경이 없는 수많은 언어들을 배려한 이름이다.

이 모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흔히 애국심이 강조되며 본질적으로 민족혼을 담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모어를 중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모어와 애국심의 확실한 관계는 제대로 증명되지 않는다. 모어의 기능과 효과가 워낙 넓어서 매국노에게도, 적들에게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의 언어를 지나치게 애국주의적 관점에서 논하는 차원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모어는 공짜로 배우는 언어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큰 가치가 있다. 반면에 외국어는 무언가 값을 치르고 배우게 된다. 모어는 공짜이니만큼 사람마다 별다른 차이 없이 어슷비슷한 능력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 언어를 이용한 교육, 지식, 정보에는 보편적 신뢰가 생긴다. 나만 모르는 일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사회공동체는 모어의 능력을 구성원의 ‘자격증’처럼 생각한다. 또한 공짜는 특권층의 이익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공통성과 유대감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같은 의미에서 기초적인 사회생활을 저비용으로 혹은 공짜로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은 모어와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이 모이면 대개 같이 먹는 일부터 준비한다. 같이 먹으며 이야기하는 것이 공동체 구성원임을 서로 확인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자발적 기여와 헌신으로 강해진다. 결국 공동체는 공짜로 배운 모어의 바탕 위에, 서로 자신의 이기심을 넘어서서 공동체에 바치는 공짜의 힘으로 존재하는 셈이다. 모어는 이렇게 구체적인 이익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지 원래부터 어떤 거룩함을 지닌 것은 아니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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