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국민을 향해 대놓고 욕하는 반면, 국민은 울컥 정부를 욕했다가는 곤욕을 치른다. 국민연금 논란 속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은 “세대간 도적질”이라고 했다. 국민의 일부를 도둑으로 몬 것이다. “미래세대의 재앙”이라는 청와대의 표현도 같은 맥락의 독설이다. 한편에선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림과 정부를 비판하는 행위예술이 처벌받고 있다. 180도 전도된 현실이다.
먼저 ‘정부에 대한 욕’을 생각해본다.
2008년 8월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한 지방도시를 방문했을 때다. 영접 인파 속에서 에르베 에옹이라는 사람이 작은 팻말을 흔들었다. “꺼져, 이 병신아!” 현장에서 체포돼 대통령 모독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에옹은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했다. 2013년 3월 재판소는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에옹의 손을 들어줬다. 이유는 이렇다. “정치인은 자처해서 대중의 선택을 받고자 나선 사람이다. 그러니 칭송뿐 아니라 비난에 대해서도 보통사람보다 더 감내할 의무가 있다. 더구나 에옹은 풍자의 형식을 취했다. 팻말에 적힌 말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얼마 전 자신의 악수를 거절한 시민에게 뱉었던 실언에서 따온 것이다. 풍자는 화를 돋운다. 그렇다고 이를 처벌한다면 공공의 의제에 대한 자유로운 여론 형성을 위축시키게 된다. 그것은 민주국가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다.” 사문화된 대통령 모독죄를 살려냈던 사르코지는 국제적 망신을 샀다. 해당 법은 곧 폐지됐다.
그런데 에옹은 얼마나 심한 처벌을 받았기에 유럽인권재판소에까지 찾아간 걸까. 고작 30유로(3만6499원)의 벌금에, 그나마 집행유예였다. 대통령과 정부를 모독한 괘씸죄로 구속되고 수백만원씩 벌금을 물어야 하는 우리나라 시민들은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다음으로 ‘정부가 하는 욕’을 생각해본다.
풀기 어려운 국가적 과제가 있을 때 정부는 그 해결을 요구하는 국민에게 욕하고 신경질을 내면 그만인가. 공적연금 문제에 대처하는 청와대와 정부의 태도가 꼭 그 꼴이다. 정작 국민이 불안해하고 궁금해하는 대목에는 침묵한다. 왜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 1위인지, 지금의 공적연금 제도로 우리의 노년이 안녕할 수 있는지, 해결책은 정녕 없는지…. 정부의 무언의 메시지는 ‘앞으로도 노인세대는 빈곤을 견디며 살라’는 것밖에 안 된다. 근본 원인인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세대간 갈등만 부추긴다.
우리처럼 저출산·고령화에 직면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를 최우선 의제로 삼았다. 인구구조 변화에 맞서 성장과 혁신, 번영을 지속하려면 모든 국민의 잠재력을 계발해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창했다. 이를 위해 가정친화적 노동정책, 보육 서비스와 양성평등 강화, 노인세대의 경제활동 확대와 수준 높은 복지 제공, 기업가 정신 고양과 중소기업 활성화, 창의성을 높이는 교육개혁 등 수많은 세부 과제를 두고 2012년부터 정부·재계·노동계 등과 사회적 토론을 지속하고 있다. 이를 통해 추구하는 건 세대·계층간 연대와 통합이다. 핵심 모토에 그 정신이 집약돼 있다. ‘모든 세대가 소중하다’(Every age counts).
독일이 어떤 성과를 거둘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국민에게 꿈을 심어주고 서로 연대하며 공동의 번영을 이룰 수 있도록 저력을 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정치 지도자가 할 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곳간 타령이나 하며 비전 제시도 없이 그저 견디라고만 말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저차원 정치다. 이 정부는 그 무위의 정치를 참 시끄럽게도 하고 있다. 더 바라지도 않는다. 국민을 향해 욕이나 하지 말기를, 국민이 하는 욕이라도 달게 받기를.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박용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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