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결혼식엔 주례가 없었다. 신랑 신부가 입장해서 각자 준비해 온 글을 낭독했고, 각종 축하공연이 뒤를 이었다. 그동안 신부에게 기타를 가르쳐왔다는 남자 선생님이 나와서 기타를 연주했고, 신랑의 친구가 나와서 축가를 불렀다. 공연 중간엔 신랑의 지인이 나와 신랑과 처음 만났을 때의 에피소드와 신부의 트위터로 엿본 두 사람의 애정의 역사를 위트 있게 들려주었다. 숱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머리를 언급하며 신랑 신부의 검은 머리가 자기처럼 다 빠져버릴 때까지 오래오래 잘 살 거라는 익살도 곁들였다. 신선하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결혼식이었다.
결혼식장에서 으레 듣게 되는 언사들, 이를테면 “신랑은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기업에 입사한 촉망받는 젊은 인재로서”라거나 “주례는 ○○공사와 ○○협회의 회장을 역임하시고 현재는 ○○대학의 명예교수로 계시는 ○○ 전 회장님께서 해주시겠습니다” 하는 식의 과시형 이력 나열이 없다는 점이 이 결혼식을 여타의 결혼식과 확실히 구별지어주었다. 그러니까 이 결혼식은 “앞날이 기대되는 총명한 젊은이”와 “사회적으로 능력 있으면서도 참하기 그지없는 규수”가 결합하지 않는, 신랑 신부 개인의 향기와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축제였다.
조금 늦게 도착해 뒷좌석에 앉았던 나는 고개를 주욱 빼고 지인들의 축사 한마디, 축가 한 소절을 놓칠세라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꽤 긴 결혼식이었지만 지루하단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고, 내가 모르고 있던 신부의 많은 면을 알 수 있어 뿌듯했다. 신부가 어떤 이들과 사귀어왔고 어떤 취미를 가졌으며, 신랑과 연애하면서 어떤 장소를 다녔는지 엿보는 것은 쏠쏠한 재미였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려진다고 해야 할까.
흥미진진한 여러 순서 중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신랑이 준비한 트럼펫 연주였다. 식의 마지막에 깜짝선물처럼 등장한 이 공연은 몇달 전부터 신랑이 트럼펫을 배워나가는 과정을 담은 동영상 상영으로 시작되었다. 트럼펫을 처음 잡은 초기에 악기 소리조차 내지 못하던 신랑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발전하긴 했으나 동영상이 끝날 때까지 능숙한 연주에 이르지 못했다. 동영상 상영이 끝나고 실제로 연주를 해보였을 때도 그 서투름은 여전해서 하객들은 신랑이 실수로 커다란 트럼펫 소리를 낼 때마다 폭소를 터뜨렸다. 연주가 진행되는 내내 화면에서는 신랑이 이때까지 촬영해온 신부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햇살을 받으며 환하게 웃는 모습, 비를 맞으며 어딘가를 쳐다보는 모습, 근사한 조명이 있는 카페에 앉은 모습, 놀란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하는 모습. 서투르기 짝이 없는 트럼펫 소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던 화면 속 여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름답구나! 그것은 지금껏 살면서 보아왔던 근사한 모든 것들을 압도하는 풍경이었다.
돌아오는 길, 조금 전 탄생한 부부의 앞날을 상상해보았다. 그동안 결혼식장에 다녀오면 화려한 결혼식 이후 펼쳐질 일상의 한구석에서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을 권태와 허무를 떠올리며 미리 씁쓸해했는데, 이날은 달랐다. 공고히 행해져온 과시적 습속을 결혼식장에서부터 걷어낼 수 있었던 부부이므로 앞으로 닥쳐오는 무시무시한 일상에도 용감하게 대항하며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마음대로 예감하며 흐뭇해했다. 불합리한 인습과 권태라는 덫에 걸려도 서로를 향한 시선이 완전히 가로막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다 보니 슬그머니 샘도 났다. 난 왜 그렇게 결혼하지 못한 거지? 앞으로도 이런 결혼식을 많이 보게 되길 기원하면서, 함께 가는 길에 첫발을 내디딘 두 사람을 응원한다. 두 분, 행복하세요!
정아은 소설가
정아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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