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력의 실패’(A Failure of Initiative).
2006년 2월에 미국 하원이 발간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난에 관한 보고서 제목이다.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를 덮쳤다. 강력한 바람과 폭우에 둑이 무너지면서 뉴올리언스는 물에 잠겼고 미처 대피하지 못한 수만명이 도심에 고립됐다. 며칠간 약탈과 방화, 총격이 난무하는 무정부 상태에서 수만명의 시민은 공포에 떨었다. 카트리나와 홍수, 뒤이은 폭력사태로 인해 1800명 이상이 숨졌다. 재산 피해는 역대 미국 자연재해 중 최대 규모인 1천억달러 이상에 달했다. 동남아시아 또는 아프리카에서나 있을 법한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한 데 미국 사회는 큰 충격을 받고 그 이유를 면밀하게 되짚었다.
하원 조사위는 조지 부시 대통령이 좀 더 신속하게 대응에 나섰다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만명의 시민이 고립됐는데도 사흘이 지나서야 연방군이 투입됐고, 그나마 연방재난관리청(FEMA)과 군은 서로 소통 없이 별도의 지휘체계를 유지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면 연방기관들의 관료적 행태를 깨뜨리고 구조작업을 좀 더 효율적으로 이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서는 적었다. 하원 조사위는 “9·11테러가 상상력의 실패였다면 카트리나는 지도력의 실패였다. 상황인식의 결여와 분산된 의사결정 구조가 공포를 증대시키고 확산시켰다”고 분석했다.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서 휴가 중이던 부시 대통령은 재난 발생 뒤 곧바로 백악관으로 돌아오지 않고 만 하루가 지나서야 복귀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부시는 나중에 “카트리나 사태는 정부의 모든 단계별 대응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연방정부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이라크전 수렁에도 끄떡없던 부시의 지지율은 카트리나 사태를 계기로 곤두박질쳤고, 다시는 회복하질 못했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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