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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메르스와 단오 / 이순원

등록 2015-07-03 18:35

올해는 메르스 때문에 강릉단오제가 열리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 헌병과 경찰이 사람 많이 모이는 것을 싫어해 그토록 방해했어도 단 한 번도 끊이지 않았던 단오였다. 어떤 해는 일본 경찰이 단오굿당의 무당을 잡아가 발목을 꺾기도 하고, 씨름판 한가운데를 말을 타고 들어와 짓밟기도 했다. 먹물 물총을 만들어 단오장에 모인 부녀자들에게 먹물총을 쏘기도 했다. 그래도 단오는 연년세세 이어져 왔다. 천년도 넘게 내려온 축제가 6·25가 터진 다음해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때문에 딱 한번 단오장이 서지 못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64년 만에 메르스 때문에 단오축제가 취소된 것이다.

이게 보름 전의 일인데, 단오도 치르지 않고 여름을 맞은 게 지금도 뭔가 허전하기 짝이 없다. 단옷날에도 남들은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가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고향에 다녀왔다. 축제 없이 단오를 보내고 오니 마치 설 명절을 안 쇠고 봄을 맞이한 것처럼 아쉬움이 크다. 예전에는 단오가 정월 보름, 한식, 추석과 함께 4대 명절 중의 하나라고 했다. 지금은 경산의 자인단오와 법성포단오, 전주단오, 그리고 우리나라 단오제의 대명사와도 같은 강릉단오만 남아 있다.

지역의 축제도 축제지만 고향에 다녀오며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은 산속으로 터널을 뚫어 아흔아홉 굽이의 대명사와도 같은 대관령 길이 반듯하게 펴졌다. 그러나 예전엔 아흔아홉 굽이의 길을 돌아 수학여행을 다니고, 대학시험을 보러 가고, 또 서울로 돈벌이를 떠났다. 그 길로 단오의 주신인 국사성황을 모셔왔다. 의미도 모르며 북소리 징소리 장구소리 뒤를 따라다니는 게 좋았다. 그 길이 지금은 산속으로 터널까지 뚫어 뻥 뚫려 있다.

사람 없는 빈 단오장에 서니 옛 생각도 참 많이 났다. 공설운동장에 축구 응원을 다니던 고등학교 시절의 일들이 자꾸 떠올랐다. 상고를 다녔던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 3년 내내 책가방 속엔 주판을 넣어 다녔다. 그때는 은행에서도 관공서에서도, 하다못해 작은 구멍가게까지 주판이 없는 곳은 없었다. 그러나 이젠 어느 직장, 어느 가게에서도 쓰지 않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내 당대에 없어지고 사라지는 물건들이 너무 많다.

축제는 하지 않더라도 고향에 내려간 김에 단오축제 대신 학창 시절의 친구들도 만나고 그 시절 선생님을 찾아 인사도 드렸다. 예전에는 단오 주간이면 학교마다 선생님들이 단오장에 나와 지켰다. 혹시 나쁜 길로 빠져들고 이 학교 저 학교 패를 지어 싸움이라도 할까 봐 그랬을 것이다. 그런 추억도 텅 빈 단오장에 서니 떠오른다.

단오 때만 되면 서울에서 가수들이 내려와 극장에서 쇼도 참 많이 했다. 어머니 아버지가 달도 없는 저녁에 시오리 산길을 걸어 이미자 쇼를 구경하러 갔다. 어머니 아버지는 일년에 한 번 보는 영화도 단오 때 보았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미워도 다시 한번>, 이런 영화들이 단오 때 강릉 남대천가 동명극장에 걸렸다.

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떠올리면 모든 것이 지금으로서는 다른 세상의 일 같은 추억들이다. 시간이 흘러서만 돌아갈 수 없는 게 아니라 환경도 바뀌어 드라마 세트장을 꾸미듯 새로 꾸미지 않고는 돌아갈 수가 없다. 그런데도 어린 날 온 세상의 축제와도 같은 단오를 기다리던 마음만은 그대로다. 어쩌면 그것이 여태도 내가 잃어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 동심의 세계인지 모르겠다.

아직 메르스의 공포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도 빠른 시간 안에 잘 다스려지고 내년엔 올해 하지 못한 단오까지 합쳐 더 성대한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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