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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부모로 산다는 것 / 정아은

등록 2015-07-24 20:17수정 2015-07-25 01:16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면서 큰애가 뛰어들어왔다. “엄마, ○○이가 야구방망이에 부딪혔어.” 울먹이는 소리에 돌아보니 입 주위가 피범벅이 된 작은애가 울며 서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된 거야! 왜 이렇게 됐어! 그다음에 내가 어떻게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울부짖으면서 욕실과 아이 방 사이를 뛰어다니다가 작은애 손을 붙잡고 현관을 나섰던 것 같다. 현관을 나서면서 큰애에게 했던 한마디는 확실하게 기억난다. “그러게 엄마가 그 방망이 갖고 놀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어! 오늘 그 방망이 갖고 나가자고 한 것도 너였지!”

오후 6시45분. 택시는 잡히지 않았고, 내 손에 매달린 일곱 살짜리 아이는 입에 손수건을 문 채 부들부들 떨었다. 아이 손을 잡고 있는 내 손도 떨렸다. 머릿속으로, 이 모든 상황을 피해 도망가버리는 장면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겨우 잡힌 택시를 타고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갔다. 수술해줄 의사를 기다리는데, 인턴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다가와 물었다. 구강외과에서 꿰맬 건지, 하루 기다렸다가 내일 성형외과에서 꿰맬 건지? 만일 지금 구강외과에서 꿰맬 거라면 부분마취를 할 건지, 전신마취를 할 건지? 그는 전신마취를 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상세하게 일러주었다. 토할 경우 기도가 막힐 수도 있고, 수술한 뒤 며칠 동안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긴 설명을 듣다보니 하늘이 노래졌다. 어떻게 해야 되지?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부분마취로 당장 꿰매겠다고 답했다.

출장 중인 남편에게 상황을 알리는 전화를 걸고 나서야, 혼자 있을 큰애가 떠올랐다. 닫히는 현관문 틈새로 터져나오던 커다란 울음소리도.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큰애는 담담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사이 혼자 남은 큰애가 울면서 지나갔을 두려움과 억울함의 시간이 불쑥 떠올랐지만, 꾹 삼키고 침착하게 말했다. “엄마 큰 병원에 왔거든. 동생 치료받으면 괜찮아진대. 걱정하지 말고 밥솥에서 밥 떠서 먹고 있어.” 큰애는 그러겠노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옆에 있던 작은애가 말했다. “형아 불쌍하다.” 시뻘겋게 물든 손수건을 입에 문 채 두 번이나 말했다. “왜 불쌍해?” 내가 수건을 빼주면서 물었다. “야구방망이, 실은 내가 가져가자 그랬거든.” 나는 작은애의 입에 다시 수건을 물리고, 앉은 채로 눈을 감았다.

의사가 시술을 할 동안 나는 움직이지 않도록 아이의 머리를 붙잡고 있었다. 처음엔 나중에 소설에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어 아이 입에 쇠갈고리가 관통하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정아은 소설가
정아은 소설가
모든 폭풍이 지나가고,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왔다. 큰애한테 사과할까. 나는 한참 동안 고민했다. 미안한 건 사실이지만 왠지 부모로서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망설임 끝에 사과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보다 삼십 년 늦게 내 ‘아들’이란 역으로 태어났을 뿐 결국 아이도 자기만의 우주를 가진 귀한 인격체가 아니겠는가. 큰애를 소파에 앉히고, 정식으로 사과했다. 아까 네 잘못이 아닌데 엄마가 소리 지르고 화냈어. 미안하다. 사과하는 나를 보고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괜찮아, 엄마. 엄마도 놀랐으니까 그랬겠지. 나는 깜짝 놀라 아이를 쳐다보았다. 검은 뿔테 안경 너머에서 반짝이는 열한살짜리 인격체의 깊고 맑은 눈. 그 시선 앞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나는 아이를 와락 당겨 안았다. 미안해, ○○아, 엄마가 잘못했어.

정아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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