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대관령 동쪽 산골마을의 논은 대개 계단식이다. 논마다 물이 흘러내릴 수 있게 논도랑을 만드는데 여기에도 쌀미꾸리가 바글바글하다. 봇도랑과 논도랑은 자리가 좁아 그물을 댈 수 없어 곡식 가루를 치는 체로 고기를 잡는다. 체의 올이 너무 가는 것은 진흙물이 쉽게 빠지지 않아 체의 밑창이 빠져서 안 되고, 올이 가장 굵은 체를 써야 한다.
개울에도 쌀미꾸리가 있지만 한꺼번에 큰 품 안 들이고 잡을 때는 봇도랑과 논도랑으로 가야 한다. 아이들이 방학을 한 요즘 논도랑과 봇도랑의 고기들도 씨알이 굵어진다. 미꾸라지는 길고 미끌미끌하고, 쌀미꾸리는 그보다 작다. 생긴 건 꼭 메기다. 어린 시절엔 주로 이걸 잡았다. 좀더 자라서 고등학교 시절엔 퉁가리, 메기를 잡으러 강릉에서 대관령을 넘어 다른 동네로 원정도 다녔다.
예전 시골에서는 복날이 되었다고 해서 아까운 닭을 함부로 잡아먹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러 집이 어울려 돼지를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아이들이 논도랑과 봇도랑에 가서 미꾸라지와 쌀미꾸리 한 사발을 잡아 오면 그걸로 한 솥 가득 추어탕을 끓인다. 고추장을 풀고, 밀가루로 수제비를 빚어 넣고, 파를 왕창 썰어 넣고, 다행히 계란 하나 있으면 그걸 깨어 넣어 복날 먹거리를 마련했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오래전 얘기지 지금은 논도랑에 고기가 없다. 봇도랑도 예전 같지가 않다. 냇물의 고기도 농약 쓰기 전과 후가 10분의 1 정도 될 만큼 차이가 난다. 미꾸라지는 생명력이 강해 그래도 개울에서 견뎌내는데 쌀미꾸리는 개체수가 100분의 1 정도로 줄어든 것 같다.
우리집만 농약을 안 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산비탈 쪽의 계단식 논부터 시작해 아랫마을의 평지 논까지 그 마을 전체가 농약을 쓰지 않아야 이런 고기들도 되살아날 수 있다. 논의 해충은 물론 잡초까지도 농약으로 다스려 잡는 시절에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 방학이 되면 자주 마을 앞 냇물로 나가 미꾸라지와 쌀미꾸리를 잡았다. 저녁이면 마당에 멍석을 펴고 그 옆에 모깃불을 피워 놓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저녁을 먹던 시절의 일이다. 늦은 저녁밥을 먹는 동안 하늘엔 별이 돋는다. 더 어린 시절엔 까만 하늘에 반딧불이가 고운 불빛을 이을락 끊을락 날아다녔다.
젊은 시절, 군에 가 있을 때 한밤중 보초를 서며 나도 모르게 고향 생각을 하게 되면 겨울엔 처마 높이까지 쌓인 눈 풍경이 떠오르고, 여름이면 동생과 함께 봇도랑을 뒤지고 마당에 멍석을 펴고 저녁을 먹던 일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번 여름휴가를 좀 특별하게 보내기로 했다. 형제들마다 온 가족이 아버지의 고향에서 아버지의 형제들과 함께, 또 거기에 모인 제 사촌들과 함께 천렵을 하는 것은 어떨지 이야기했다. 시골집에는 아직 할머니가 살아 계시고, 또 아버지의 형제들과 제 사촌들이 모이면 스무명도 넘는 대식구가 한 마당에서 떠들썩하게 시간을 보내고 오는 것이다. 바다에도 가고 산에도 가고 계곡에도 가겠지만, 그래도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곳이 아버지들이 어린 날 뛰어놀던 시골집 마당이다.
처음엔 자기 친구들과 여행을 하고 싶다던 아이들도 선선히 아버지의 제안에 따라준다.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시골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노는 게 더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저들도 이제는 자라 어른들의 마음을 배려하는 것이다. 이런 휴가가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가끔은 이렇게 오히려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때도 있는 것이다.
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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