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안경 없는 세상을 상상한다. 고도 근시인지라 안경을 뺏기면 단박 무능력자가 돼 버릴 게 뻔하다. 안경이란 장치를 달면 제법 기능적인 사이보그지만 이 장치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읽고 쓰는 건 차라리 사치이리라. 보행조차 둔해질 테고, 옷 입고 밥하는 일상마저 더듬거리게 될 게다.
나고 자란 시절 까닭인지 개인의 특성 탓인지 모르겠으나 재앙의 상상력을 가까이 지고 산다. 매일 파국을 냄새 맡고 잠들 때마다 밤새 무사할지 걱정한다. 마음의 균형에 도움 되는 바 없지 않으나 피곤한 노릇이다. 하긴 내일 하늘에서 개구리비가 내린다 해도 놀랍지 않을 세상이니까. 나 같은 불출도 제법 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안경 걱정을 시작한 건 <25시>를 본 이후가 아닌가 싶다. 게오르규의 소설이나 베르뇌유가 감독한 동명의 영화나, 한때 이상할 정도로 유행이었는데,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건 주인공 요한이 아니라 시인 트라얀이다. 수용소에서 구타당하면서였던가, 안경이 깨진 뒤 렌즈 조각을 붙여 겨우 세상을 보던 시인은 마지막에 철조망 담장을 향해 걸어 나간다. 항의하는 듯 당당하게가 아니라, 의아하다는 듯 더듬더듬.
갓 안경을 마련한 때였나 보다. 한순간에 수용소 내 반(半)소경으로 전락한 시인을 보면서, 수용소가 아니라 안경이 자꾸 밟혔다. 주인공 요한의 억울한 인생유전은 외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용소에 갇히든 군인으로 뽑히든 포로가 되든 속절없이 시류에 휩쓸려 가는 그 모습은 그저 답답했다. 루마니아 출신 작가가 제2차 대전 전후 약소국의 자기의식을 실어놓은 것이기 쉽겠으나, 한반도도 그렇긴 하지만, 끙.
작가 염상섭도 어려서 한때 모자라는 놈 취급을 받았단다. 학교만 가면 머리가 휭 돌았는데 안경을 맞추고 나니 세상이 환해졌다나. 그러고 보면 총명하다는 단어도 귀 밝을 총(聰)에 눈 밝다는 뜻의 명(明)을 쓴다. 잘 듣고 잘 보는 것, 즉 정확하게 감각하는 것이 인지능력의 출발점이란 사고가 배어 있는 셈이다. 나이 들어 총명이 흐려지는 것도 감각능력의 퇴화와 직결돼 있을 게다.
그런데도 명(明)을 위한 도구, 안경은 종종 구박덩어리였다. 내 아는 선배는 아직도 손윗사람 앞에서 안경을 벗는데, 안경이란 게 건방 떨고 젠체하는 느낌이 있어서란다. 십수년 전만 해도 택시 기사들이 안경 낀 여자는 첫 손님으로 태우지 않는다는 말이 파다했다. 100년 넘게 왕이나 고관들만 안경의 혜택을 누려온 내력 때문이려나. 아니면 물려받은 신체 조건을 감히 변조하려는 시도가 괘씸해 보여서려나.
국민 절반이 안경을 사용하게 된 형편이라 이젠 다 옛말인가 보다. 그런데도 사고나 재해나 전쟁 같은 상황을 떠올리면 절로 안경 걱정을 하는 습관은 없어지지 않았다. 자식들마저 안경잡이인지라 걱정이 더해졌나 싶기도 하다. 저놈들이 <25시>식 재앙의 상황에 처하진 않아야 할 텐데. 저 녀석들 성년이 될 즈음엔 평화도 흠뻑 자라 있으면 좋으련만. 평생 마음속 분단과 씨름하는 건 지금 세대까지의 몫으로 끝날 수 있었으면.
안경 덕에 밥하고 안경 덕에 글 쓴다. 안경 덕분에 총과 명을 흉내 낸다. 서랍 속 여벌 안경도 무사하다. 그런데도 자주 안경을 빼앗긴 시인을 생각한다. 한순간에 박살나 버릴지 모르는 많은 것을 떠올린다. 한번도 겪은 적 없는 전쟁을 앓는다. 그러고 보면 전쟁 없는 상태가 곧 평화는 아닌가 보다. 평화란 존재들의 조화, 평화란 균형 잡힌 복리, 평화란 함께 나누는 연대, 평화란 또? 광복 70주년, 갈 길은 아직 한참이다.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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