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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호칭난감 / 정아은

등록 2015-08-21 18:39

등단해 책을 낸 뒤로 나를 ‘정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처음엔 어색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는데, 시간이 흐르니 이 호칭이 영 계면쩍고 부담스러웠다. 정 작가라니. 왠지 내가 목에 힘을 잔뜩 준 느낌에, ㅈㅈ을 연속 두 번 발음하기가 얼마나 불편할까 하는 생각까지 겹쳐, 들을 때마다 마음이 죄스러웠다. 용기를 내어 몇 번 “그냥 저를 아은이, 아니면 아은씨라고 불러주세요”라고 해보기도 했지만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손까지 휘저어가며 ‘그래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변하는 상대의 반응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내 요청에는 당신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바람이 상당 부분 들어 있었던 것이다.

한번은 친구가 내 책 여러 권을 사들고 와서 주위에 선물하겠다며 사인을 부탁했다. 받을 이들의 이름을 알려 달라 했더니 홍길동 부장님, 홍길순 차장님…이라는 호칭이 술술 흘러나왔다. 나는 잠깐 아연해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냥 홍길동 님께라고 쓰면 안 될까? 너한테야 부장님이지 나한테는….” 그러자 친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안 되지! 꼭 직급을 붙여줘.” 나는 한 번 더 말해볼까 하다가, 책을 사준 친구의 마음을 생각해 그냥 넘어갔다.

친구와 헤어져 집에 오는 길, 나를 이름으로 불러주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았다. 꼽아보니 그런 사람은 채 열 명이 되지 않았다. 시간의 범위를 좁혀 보았다. 최근 일주일 동안 나를 이름으로 불렀던 사람의 수는? 답: 세 명. 위에 언급한 친구를 제외하면 모두 원가족에 해당하는 이들이었다. 범위를 조금 넓혀 보았다. 또래 아이들과 집단생활을 했던 학창시절 이후, 그러니까 사회에 나온 뒤에 만난 이들 중 나를 직급 없이 이름으로만 불렀던 사람의 수는? 답: 스무명 남짓. 몇 명을 빼고는, 모두 외국인들이었다. 나는 사내직원의 대부분이 외국인인 회사에서 장기간 일을 했는데, 이들은 만나서 악수만 하면 바로 나를 이름으로 불렀다. ‘섹션 매니저 정’이라거나 ‘바이스 제너럴 매니저 정’이 아닌 짧고 확실한 호칭, ‘아은’으로. 상대를 부르기 전에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머뭇거릴 필요도, 실례지만 직급이 무엇이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는 명쾌한 호명. 덕분에 지금도 그들은 내게 상하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의 아우라로 남았다.

우리는 왜 서로를 이름만으로 불러주지 않을까. 만나서 상대를 직급이나 직업명으로 부를 때마다,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김 교수님, 김 사장님, 혹은 김 전 장관님이라고 틈만 나면 불러주지만 김 알바님, 김 도우미님, 혹은 김 전 배달원님이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교수나 사장이나 전 장관이 아닌 이들은 무엇이라 불리는가? 이들은 아저씨나 아줌마, 혹은 저기요로 불린다. 몇 년 전 아이티업계를 중심으로 모든 직원이 서로 ‘○○님’이라고 부르는 문화가 퍼져나갔고, 어떤 교수는 ‘나를 교수님이라 부르지 말고 ○○씨라고 부르라’고 선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소식을 들으면서 은근히 그 물결이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길 바랐는데, 내가 나를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하면 서로 어색해지기만 하는 걸로 보아 아직 그 물결이 대세가 되지는 못했나 보다.

정아은 소설가
정아은 소설가
말은 사회를 반영하지만, 거꾸로 말이 사회를 바꾸기도 한다. 만나는 모든 이들과 대등한 호칭을 나누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길 기원하면서, 오늘도 나는 민망해질까봐 차마 내놓지 못했던 말을 끄집어내 만지작거린다. 저를 그냥…이름으로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정아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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