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열두 달 중에 팔월이 가장 더운 달이다. 칠월도 덥지만, 팔월이 더 무덥다. 그러나 끝까지 더운 팔월이 어디 있겠는가. 말복 처서가 지나면 한낮은 더워도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괜히 계면쩍은 마음으로 슬며시 문을 닫게 된다. 어릴 때에도 한여름의 바람은 팔과 목덜미를 훑고 지나가도 후텁지근한데 가을바람은 왜 몸에 닿기만 해도 시원하냐고 어른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마다 어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원래 그렇다”이다.
정말 원래 그런지 어릴 때는 추운 것도 어른들보다 못 참고 더운 것도 어른들보다 못 참는다. 여름 끝에 아침저녁으로 조금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아이들 방부터 두툼한 이불을 내린다. 바로 요즘 같은 계절이다. 이불을 완전히 덮는 것도 아니고, 걷어차고 안 덮는 것도 아니게 이불자락을 둘둘 말아 다리 사이에 끼워놓고 잠들면 옆에 있던 어른들이 그 모습을 보고 ‘다 큰 줄 알았더니 아직 애구먼’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어른들도 바로 이때가 되면 삼베 홑이불을 개어 들여놓고 죽부인을 슬그머니 벽장 안에 넣어둔다.
한창 더울 때의 생각으로는 좀처럼 물러가지 않을 것 같은 무더위가 물러가고, 뜰 안에 우는 벌레들의 울음소리도 달라진다. 일어나면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맴맴맴 하고 울던 참매미의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그보다 몸집이 작은 애매미가 결혼하기 좋은 가을철을 알리듯 ‘시집시집 시집가시라시’ 하고 운다. 밤이면 댓돌 아래에서 귀뚜라미가 가는귀먹으신 할아버지의 귀를 뚫어드리듯 ‘귀뚤귀뚤’ 운다.
손에 부채를 안 들고는 못 살 것 같은 한여름에서 해가 지면 슬며시 문을 닫는, 여름도 가을도 아닌 요즘 철까지 불과 열흘의 시간이다. 단 며칠 사이에 이렇게 계절의 변화가 감지된다. 정말 간사한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아침저녁 기온의 차이인지, 바람 몇 점에 금방 변해버리는 사람의 마음인지 모를 정도다. 어쨌거나 밖에 나가면 똑같은 초록세상의 초록풍경인데도 며칠 사이 시야가 확 넓어지는 느낌이다. 그것이 바로 아직은 어제나 다름없는 초록빛 들판에서 느끼는 가을의 첫 기운이 아닌가 싶다.
요즘은 과일들도 참 이르게 나온다. 봄에 나와야 할 딸기가 겨울에 나오고, 여름에 나와야 할 수박과 참외가 봄에 나오고, 오히려 제철에 나온 과일이 마치 늦장을 부리다가 지각한 것처럼 보이듯 이제 한주일만 지나고 열흘만 지나면 이른 햇밤이 나올 것이다. 내 어릴 때 시골 어른들은 무엇이 빨리 자라는 모습을 보면 ‘장마 뒤에 오이 자라듯 하고 책 속에 아이 크듯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이 요즘 과일들에 딱 맞는 말이다. 모든 과일이 한철은 빨리 자라 곧 가을 과일이 나올 때가 되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계절의 변화를 확인하는 방법이 조금은 달랐다. 어른들은 들판의 곡식들로 계절의 변화를 확인하고, 아이들은 학교를 오가는 산길 온 산에 가득한 개암을 따서 입안에 깨물었을 때 도깨비를 쫓아내듯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신맛 대신 달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감돌면 그것이 곧 가을의 시작임을 알았다. 그게 밤보다 더 빨리 익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봄부터 여름까지 유난히 가뭄이 심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여름비 몇 번으로 해갈은 충분히 되었고, 이제 더 들판의 벼를 익힐 볕이 여름 폭양과는 다르게 농부들한테 귀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마음 안에 무엇을 익혀야 할지 고민해야 할 가을인 것이다. 참 반갑다, 이 가을.
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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