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차마고도(茶馬古道)라는 아주 오래된 길이 있다.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환하기 위해 고산준령의 산허리를 깎아 만든 교역로로 중국의 내륙과 티베트·네팔·인도를 잇는 무역로이다. 실크로드보다 훨씬 앞서 ‘마방’이라 불리는 상인과 그들이 끌고 다니는 말과 야크의 발로 개척된 길이다. 해발 4000미터가 넘는 험준한 설산과 한 발 아차 하면 목숨을 잃는 아찔한 협곡을 잇는 이 길을 통해 차와 말과 소금과 곡식 등 다양한 물품의 교역이 이루어졌다. 여러 이민족의 문화와 종교와 지식이 이 길 위에서 교류되었다. 길이 만들어지면 세상은 통한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이름의 길이 있다.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아도 우리나라 산업사에 빼놓을 수 없는 순전히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든 운탄고도(運炭高道)가 바로 그 길이다. 우리나라 석탄산업은 1906년 광업법이 제정된 뒤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화력발전용으로 전남 화순의 구암탄광을 시작으로 식민지 시절 대단위 삼척탄좌의 개발이 이어졌다.
해방 후에도 석탄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부존자원으로 경제발전의 가장 큰 동력이 되어주었다. 특히나 태백·고한·사북 탄광지대는 광부 중심의 탄광촌 문화가 형성되었다. 당시 가을과 겨울철 국민의 주 사망 원인이 연탄가스 중독일 정도로 석탄은 국민 생활에 가장 중요하고도 밀접한 자원이었다. 우리나라 철도 가운데 태백선·영동선·정선선·함백선은 사람이 아니라 순전히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건설한 철도였다.
이 무렵 석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정치적으로, 또 외교적으로 보여주는 자료가 하나 있다. 1957년 함백선 개통식 때 그야말로 검은 석탄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이 산골에 상공부 장관과 교통부 장관과 주한 미국대사와 주한 자유중국대사가 참석했다. 석탄은 그만큼 중요한 산업이자 생필품이었다.
운탄고도는 바로 그런 시절에 만들어진 길이다. 탄광에서 역까지 석탄을 실어 날라야 하는데 산중에 제대로 된 길이 없었다. 만항재에서 함백역까지 평균 해발고도 1100미터의 고원 산길 40여킬로미터 구간을 2000여명의 슬픈 과거와 슬픈 사연을 가진 국토건설단이 오로지 삽과 곡괭이를 써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길로 만들었다.
운탄고도라는 말도 석탄을 나르던 높은 길이라는 뜻이었다. 지난 시절엔 국토건설단의 땀과 한숨과 눈물 위로 검은 먼지를 날리며 석탄을 실은 트럭들이 오갔지만 이 지역의 300여 개의 탄광이 차례로 폐광되면서 이 길도 자신의 몫을 다했다.
석탄이 잊혀가며 이 길도 오랫동안 잊혀졌다. 그러다 최근 강원랜드 하이원리조트에서 이 길을 새로운 트레킹 코스로 개발했다. 지난 시절의 운탄고도는 석탄을 나르던 높은 길이었지만 지금은 ‘구름이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는 고원의 길’이 되었다. 연탄이 국민 생활의 필수품이었던 시절 석탄을 실은 제무시(GMC) 트럭이 다니던 산속 숲길을 지금은 전국에서 모여든 등산동호회와 트레킹동호회원들이 구름 위의 양탄자를 밟고 하늘을 걷는 기분으로 걷는다.
하루에도 수백 대의 트럭이 오가며 검은 먼지를 날리던 길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동안 되살아난 수백 종의 야생화가 이 길을 걷는 나그네의 좋은 길동무가 되어준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해발 1100미터가 넘는 고지와 능선을 잇는 운탄고도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뒤안길처럼 호젓한 산길에 희귀 고산식물이 함께 호흡하는 새로운 힐링 명소가 되었다. 지금이 가장 걷기 좋은 계절이다. 모두 배낭을 메고 강원도 정선의 저 고원길로 가자. 저절로 아라리가 난다.
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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