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날, 역귀성으로 서울에 오신 어머니를 모시고 아파트에 들어서니 주차장에 빈자리가 없다. 한참을 찾다 간신히 차를 댔다. 예전 같지 않다. 한해 두해가 다르다. 제사를 모시고 와 서울에서 명절을 보내게 된 17년 전만 해도 이러지 않았다. 이맘때면 텅 빈 아파트 마당에서 배드민턴을 칠 수 있을 정도였다. 시내 길은 뻥 뚫려 쾌적한 서울을 누릴 수 있었다. 이제는 아니다. 추석 날, 점심때 온다던 누이들 두 가족이 한 시간가량씩 늦었다. 길이 주차장처럼 꽉 막혔다고 한다. 귀성 대신 서울에서 명절을 보내는 이들은 십수년 사이 서너 배는 많아진 것 같다.
제사나 차례도 점점 옛이야기가 되어간다. 큰아이의 직장 동료 가운데 추석 차례를 지내는 집은 열 중 둘뿐이라고 한다. 동료 논설위원 가운데도 차례를 지내지 않은 지 꽤 됐다는 이가 몇 있다. 귀성 세태는 이미 달라졌다. 2004년과 2013년의 설 연휴 귀성객을 비교하면 고향에서 하룻밤만 보내거나 당일 일정으로 왔다 가는 사람이 전체의 3분의 1에서 절반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올 추석엔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고향 대신 제주도 등 휴양지가 북적이고 시내 호텔이나 캠핑장이 붐빈다. 명절은 짧게 치르고 휴식은 길게 보내는 것은 이제 굳어진 풍경이다. 제사를 매개로 대가족이 모이고 친지들이 어울리던 명절 문화는 더 이상 ‘국민 모두의 연례행사’가 아닌 듯하다.
달라진 것이 그뿐이겠는가. 명절 때면 시골 동네의 학교 운동장에서 배구에, 축구를 하며 왁자지껄 떠들던 아재와 형님들은 이제 없다. 다들 아들딸네 찾아 부산이나 서울로 떠난 시골 마을 골목길은 적막하다. 1970년대 중반의 그 시절, 동네 4에이치 구락부의 간부였고 새마을운동의 주역이던 삼촌도 고향을 떠난 지 삼십 년이 다 됐다. 생산과 생활의 단위였던 마을 공동체는 이미 사라졌다.
달라진 명절을 보내는 동안 유엔을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을 ‘국제사회의 새 농촌 개발 패러다임’으로 내세우는 연설을 하고 새마을운동의 확산을 위한 행사에 왕성하게 참석했다. 텔레비전 뉴스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끈 개발 정책이자 국민적 의식개혁 운동인 새마을운동이 본격적으로 국제화된다”는 소식을 거듭 전했다. 정작 그 시절 새마을운동의 주역들은 그런 뉴스에 별 감흥이 없어 보인다. 30~40년 전 ‘대한늬우스’에서나 봄 직한 뉴스인데도 심상한 듯하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박근혜 정부의 시대착오는 이제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시대착오를 뜻하는 아나크로니즘(anachronism)은 그리스어 ‘ana’(이전, 앞)와 ‘khronos’(시대)가 합친 말이다. 그 뜻대로 30~40년 전의 진부한 생각과 행동방식은 지금 쌍둥이처럼 반복되고 있다. 유신 직후 박정희 대통령이 지시했던 새마을운동의 확산은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나선 새마을운동의 국제화로 이어진다. 박근혜 총재의 구국여성봉사단과 그 후신인 새마음봉사단이 좋은 명분을 앞세워 기업을 상대로 벌인 강제모금의 풍습은 박근혜 대통령이 앞장선 청년펀드 조성에 기업·은행별로 ‘협조 요청’을 하는 꼴로 되살아났다. 줄곧 검인정 체제이던 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후퇴시켰던 1974년 유신 정권의 야만은 40년 만에 박근혜 정부에 의해 다시 시도된다. 1979년의 국사 교과서는 5·16 쿠데타 당시 ‘혁명공약’ 문구까지 조작했다. 이제는 무엇을 조작하고, 무엇을 미화하려는 것일까.
시대가 달라졌으니 제사도, 명절 풍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버지 때와 지금이 많이 달라졌으니, 앞으로는 더 급격하게 변할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의 아버지 때 그대로 하고 싶은 것 같다. 그런 시대착오가 성공한 일은 별반 없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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