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기억하시리라. 알자스로렌 지방 초등학교의 아멜 선생님, 그리고 그가 “내일부터 독일어로 수업을 하게 됩니다”라고 통고한 후 돌아서 칠판에 적던 ‘프랑스 만세!’를. 좀 더 관심이 많은 축이라면 ‘마지막 수업’의 사연이 그렇듯 단순치 않으며, 알자스로렌 지방에선 본래 고지 독일어가 널리 쓰였다는 사실을 들으신 바 있으리라.
알자스로렌을 엘자스로트링겐이라 바꿔 불러 독일로 편입시킨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앙리 바르뷔스의 ‘포화’는 ‘마지막 수업’ 이후의 소설이지만, 알자스 출신 독일 병사가 프랑스어로 말을 걸어오는 장면이 나온다.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었던 보불전쟁이 끝나고 알자스로렌이 독일에 할양된 지 40여년 후, 1차 대전 한복판에서의 일이다.
‘포화’에서는 이어 프랑스 병사가 알자스로렌 출신 독일군을 동반한 채 아내를 찾아 떠난다. 발각나면 총살을 각오해야 할 처지인데도 둘은 프랑스어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의좋게 걷는다. 독일 군복으로 변복한 프랑스 병사가 독일 점령지에 잔류한 아내의 숙소를 찾아내고, 거기서 아내의 평온한 일상을 목격한 후 절망에 빠지기까지.
언어는 힘이 세다. ‘포화’에서처럼 서로 적군인 처지를 떨치게 해줄 때도 있다. 한편 언어는 아무것도 아니다. 참혹한 내전에서 웅변과 호소가 들리기나 하던가. 국경은 삶을 다 금 긋지 못하고, 반면 국경 내부에도 파열음은 곳곳에서 난다. 알자스로렌, 즉 엘자스로트링겐은 프랑스어와 독일어가 다 쓰였고, 주민은 인종적으론 독일에 가깝지만 문화적으론 프랑스와 친근했으며, 요컨대 국경으로 다 구획될 수 없는 지역이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은 같은 문자를 쓴다. 억양이 낯설긴 하지만 말도 잘 통한다. 다른 나라로 갈라진 지 아직 반세기 남짓이다. 분단 초기 북에서 새로운 글자를 실험한 적도 있지만 다행이랄지 오래잖아 사라졌다. 1933년에 발표된 맞춤법통일안은 오늘날까지 남북의 언어에 공통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당시로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총독부의 표기법에 맞선 점은 대단했으나 논란이 들끓어, 조선어학회의 맞춤법통일안은 오래도록 난항을 겪었다. 지지선언을 냄으로써 논쟁을 종식시킨 문학가들 내부에도 이견은 적잖았던 모양이다. 채만식이 소설 ‘냉동어’에서 맞춤법을 어지간히 비아냥거린 반면 이태준은 ‘행복에의 흰 손들’에서 맞춤법통일안을 채택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 바 있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남북을 가깝게 묶는 단단한 끈 중 하나다.
한글이 없었다면, 식민지 시기를 통해 한국어를 지키지 못했다면 우리는 지금과 크게 다르게 살았을 게다. 게일어를 잃은 아일랜드처럼 독립 후에도 식민자들의 언어를 사용해야 했을지 모른다. 조선어학회나 조선어학연구회가 없었다면, 남북의 어문생활도 오늘날과 달랐을 테고, ‘통일’이란 말도 아득했을지 모른다. 남북이 본래 하나였고 다시 하나여야 한다는 생각은 공통의 언어와 문자 덕에 힘을 얻는다.
그러나 알자스로렌의, 엘자스로트링겐의 사례가 보여주듯 국경의 문제는 간단치 않다. 국경은 언어와 문화, 인종과 종교, 이념과 체제의 차이 중 일부 국면에 조응할 뿐이다. 국가 사이에서보다 국가 내부에서 더 참혹한 21세기의 전쟁 양상을 보면 더더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한글날 떠올릴 생각으론 불경하겠으나, 요즘 남북을 보다 보면 ‘통일’보다 ‘사이좋은 이웃나라’를 먼저 희망하게도 된다. 혹은 통일을 위해서라도 사이좋은 이웃을.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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