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는 자신의 뒤에 오는 후임자가 자신보다 뛰어난 것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는다. 권력자의 이런 심리 상태는 동서가 다르지 않고 고금에 구분이 없다. 구약성서를 보면, 이스라엘의 왕 사울은 훗날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다윗을 두고 백성들 사이에서 “사울은 전쟁에서 천명을, 다윗은 만명을 죽였다네”라며 칭송이 자자하자 시기심에 사로잡혀 여러 차례 그를 죽이려 했다. 그래서 ‘사울 신드롬’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권력자의 이런 심리는 현대 한국 정치사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대통령이 선호하는 후임자의 유형은 되도록 고분고분한 사람, 자신의 안전판 노릇을 충실히 해줄 사람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차기 대선 후보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에서도 권력자들의 변치 않는 후임자 취향은 확인된다. (물론 김무성 대표가 다윗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도 ‘김심’이 애초 이홍구 당시 신한국당 대표 쪽에 있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무색무취한 이미지 등에서 두 사람이 겹쳐서 다가오는 것도 흥미롭다.
반 총장이 아직 대선 출마도 선언하지 않은 상태에서 적격 여부를 따지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하지만 ‘세계 대통령’이니 하는 말의 허구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실 그는 국제사회에서의 인지도나 평판 등 ‘자력’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게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가 유엔 사무총장이 된 것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공이 크며, 노 대통령이 만약 다른 사람을 밀었다면 지금의 반 총장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반 총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조문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두어 달 뒤인 2009년 8월 ‘제주평화포럼’ 강연자로 참석하면서도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지 않았다. 그는 2011년 12월에야 처음으로 봉하마을을 찾았다.)
그럼에도 그가 갖고 있는 온건·합리적인 이미지, 기성 정치인들과는 구분되는 참신한 이미지, 충청권 출신으로 지역화합의 적임자라는 이미지 등은 유권자의 환상을 자극하는 대단한 강점이다. 그런데 의문이 가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이런 성향은 박 대통령의 지금 국정운영 방향과는 완전히 어긋난다. 박 대통령이 보여온 반민주적, 극단적, 지역분열적 국정운영 기조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면 수구보수 정치인들 중에서도 오른쪽 맨 끝에 있는 후보를 찾는 게 맞다. 그런데도 왜 굳이 반 총장인가?
정치적 흙에서 자라지 않다가 갑자기 남의 손에 의해 권력 정상에 이식되는 ‘뿌리 없는 꽃’의 운명은 불안하다. 그 꽃은 어느 때고 쉽게 시들 수 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정치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는 ‘정치적 큰손’이 ‘노’ 하면 국정운영이 힘들어진다. 결국 꽃을 시들게 하느냐 마느냐는 분재이식한 사람의 뜻에 달려 있다. 게다가 반 총장은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구축해 상황을 정면돌파할 성격도 아니다. 같은 전문 외교관 출신으로 팔자에 없는 대통령 노릇을 한 최규하 전 대통령의 예를 생각해보면 쉬울 것이다. 만에 하나 반 총장이 대통령이 되면 국정운영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상왕의 수렴청정’이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지나친 억측일까.
박 대통령은 민생에서는 무능의 극단을 달리지만 이념전쟁 하나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능(?)한 면모를 보여왔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등 각종 역사 거꾸로 돌리기를 그는 자신의 역사적 소명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런 이념전쟁의 전과물들이 자신의 퇴임 뒤 훼손되는 것을 그는 참지 못할 것이다. 고분고분한 후임자를 물색해 자신의 힘으로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이런 상황과도 밀접히 관련돼 있어 보인다.
박 대통령의 몸속에는 선천적으로 두 개의 유전자가 각인돼 있으리라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하나는 독재의 유전자요, 다른 하나는 장기집권의 유전자다. 집권 이후 민주주의와 인권의 퇴행을 통해 전자는 확실히 드러났다. 그리고 내년 총선에서 전략공천을 통해 친박세력 중심으로 새누리당을 재편하고, 자신의 손으로 후임 대통령 만들기까지 성공한다면 실질적인 장기집권 토대가 마련되는 셈이다. 지금 어디선가 ‘박씨 왕조 18년 시즌2’ 준비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만 같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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