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여러 가족이 밭농사를 함께 짓는 모임에 합류했다. 넓은 밭에 이것저것 심을 작물을 거론하는데, 한 사람이 담배 모종을 집에서 키우고 있노라고 했다. 하필 담배를 심을 생각을 했냐고, 담배를 피우긴 하냐고 물어봤다. 피우지는 않는데, 담뱃세를 크게 올린 게 화가 나서 시위하는 모양으로 재배하려는 것이라 했다. 밭에 옮겨심은 모종은 꽤 잘 자랐다. 잎을 따 그늘에서 말렸더니 색깔이 곱고 향도 괜찮다. 일찌감치 담뱃대부터 장만했다는 이도 있다.
조세 저항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정부의 담뱃세 인상 폭은 용감했다. 한 갑에 세금과 부담금이 1550원이던 것을 올해부터 3318원으로 올렸다. 하루 한 갑씩 피우는 사람이라면 연간 57만원 내던 세금을 122만원 내게 된다. 이쯤 되면 2013년 소득세제 개편안에 대해 “거위에게서 고통 없이 털을 뽑는 방식으로 해보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가 경질론이 들끓었던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억울해할 만하다. 담뱃세 인상은 거위 날개 깃을 마구잡이로 뽑은 수준이다.
정부는 국민 건강을 생각해 금연을 유도하려고 담뱃세를 크게 올린다고 했다. 하지만 속내는 흡연자들의 주머니를 털겠다는 것이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그 정도 담뱃세를 올릴 경우 흡연율이 34%나 떨어질 것이라 했는데, 애초 그런 전망부터가 믿기 어려웠다. 2000년대 들어 담배 소비가 빠른 속도로 줄고 있던 일본에서도 2010년 10월 담뱃세를 큰 폭 올렸는데, 2011~2013년 3년간 평균 판매량이 2010년에 견줘 7.5% 줄어드는 데 머물렀다. 2009년에 견줘서도 16%밖에 줄지 않았다.
그래도 일본은 ‘세수가 줄더라도 금연 유도가 우선’이라는 정책목표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본의 담배 관련 세수는 2011년에 전년 대비 10%가량 반짝 늘었을 뿐, 그 뒤엔 다시 감소세다. 우리나라는 담배 판매량이 일본과 비슷하게 줄어도 세수에 끼치는 영향이 다르다. 사재기와 일시적 금연에 따른 효과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올해 6~8월 우리나라 담배 판매량을 보면,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16%가량 줄어 있다. 소비량이 더 회복되지 않더라도 세금이 크게 뛰어 연간 담배 관련 세수가 12조1000억원에 이르게 된다. 6조7천억원대이던 2014년보다 80%가량이나 늘어난다.
박근혜 정부의 세정은 나라살림을 이끌기에 매우 위태롭다. 지출에 견줘 세수가 부족해 재정적자가 대규모로 쌓이고 있다. 노무현 정부 5년간 10조9천억원에 그쳤던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이명박 정부에서 98조9천억원으로 늘더니, 이 정부에선 내년 예산안과 내후년 재정운용계획으로 볼 때 167조5천억원으로 불어난다. 정부는 2013년 말 짠 중기재정운용계획에서 “미래 위험에 대비한 임기 내 건전재정 회복”을 목표로 내걸었으나, 5년간 누적적자는 그때 계획한 87조8천억원의 갑절이나 된다. 그런 상황에서, 반발을 사기 쉬운 다른 세원 확충 방안은 놔두고 채택한 게 담뱃세 인상이었다. 연간 5조원 넘는 세수 확충은 박근혜 정부 세정에서 유일한 ‘치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건강에 해로운 담배를 끊게 만들려는 ‘온정적 간섭’은 정당성만 있으면 당사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담뱃세 인상은 그저 세수를 늘리는 게 목적이었다니 흡연자들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는 경기가 나쁘다는 이유로 연례행사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경기는 계속 옆걸음이니 한때 끊었던 사람들조차 다시 담배를 입에 문다. 함께 농사지은 이들한테 청와대 앞에서 직접 재배한 담배나 한대씩 피워 물자 해야겠다.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는 심정으로.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정남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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