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황지우는 1980년대를 두고 “막장이냐, 최전선이냐”를 물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질문은 ‘역사전쟁’을 두고 다시 유효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는 하나의 ‘막장’이다. 40년 전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유신 정신’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국정화는 무엇을 위한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인가? 청와대는 부인하지만, 국정화에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것은 그간의 대통령 발언 등에 비추어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유신으로의 회귀’라는 강력한 비판에 직면할 줄 알면서도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종북몰이를 하면서까지 현 정권이 출구 없는 전쟁을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이 ‘역사전쟁’은 권력이 막장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선언이다.
한 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효녀 심청은 눈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목숨을 던졌지만, 효녀 대통령은 그 아버지의 과오를 지우기 위해 차라리 전 국민의 눈을 멀게 만들려 하고 있다. 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된다. 역사교육이란,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살피고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미래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작업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현재의 권력이 과거의 역사를 독점해 그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결과적으로 미래에 대한 시선을 차단한다는 점에서도 한 사회를 막다른 골목으로 이끄는 막장이라고 할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말 그대로 ‘최전선’의 문제이기도 하다. 김무성 대표는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꼭 이겨야만 하는 역사전쟁이 시작됐다”고 선언했다. ‘역사전쟁’이라는 전쟁의 비유는 단순한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조지 오웰, <1984>) 정권의 목적은 ‘장기집권을 위한 진지 구축’에 있다. 과거-현재-미래를 규정하기 위한 정권 주도의 총성 없는 전쟁이 총체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학생이 대자보에서 지적했듯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전체주의와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점에서도 물러설 수 없는 최전선의 싸움이다. 1992년 헌법재판소가 지적했듯이,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세계관, 다양한 사상의 형성에 역행하는 교육내용이나 교육방법 등에 대한 어떠한 간섭도 용납될 수 없”(변정수 재판관)고, “교과서 문제에 있어서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하여 획일화를 강제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기본이념에 부합하는 조처라 하기 어렵다.”(결정문) 국정교과서는 우리 사회가 질서의 뼈대로 삼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헌법 가치를 전체주의적인 방식으로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주도하는 ‘역사전쟁’은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을 앞두고 선거의 프레임을 정권 비판이 아닌 ‘종북 프레임’, ‘좌와 우의 대결’이라는 프레임으로 삼기 위한 선거전략의 차원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가까운 장래의 권력 결정에 변수가 될 수 있는 정치적 ‘최전선’의 문제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와는 달리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합리적인 상식의 차원에서 국정화 반대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피할 수도 패해서도 안 되는 싸움이다. 황지우가 ‘꽃말’이라는 시에서 “급격한 우회전은 승객의 머리를 좌경화시킨다는 것을 몰라요?”라고 했던 질문을 이번 ‘역사전쟁’에 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 국정화를 막을 뚜렷한 방법이 없다고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주주의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고 국정화에 반대하는 상식적인 시민들이 이 ‘전쟁’에 함께하고 있다는 점만은 무엇보다 큰 희망이다.
정정훈 변호사
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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