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지난 10월25일 실상사에선 천년 고불 약사여래 뒤편에 모실 불교그림 <생명평화의 춤>을 안치하는 행사가 있었네. 큰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길이길이 시민대중과 함께할 그림이네. 그 그림 안에 우리 시대 뭇 생명의 아픔 세월호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네. 그 그림을 모시는 사람들의 지극한 마음 한자락을 옮겨 보겠네.
“우리 민족의 슬픔과 기쁨, 좌절과 희망이 서린 지리산… 오늘 우리 삶과 함께하고자 마고할매와 약사여래를 불일불이(不一不二)하게 모셨다.”
그 그림, 그 마음을 보는 순간 불현듯 지난 20일 저녁에 본 세월호 유족이 걸어온 길을 소재로 만든 영화 <나쁜 나라>가 생각났네.
친구야,
처음 세월호 앞에 나선 대통령은 우리 모두와 같은 심정으로 위신도 체면도 벗어던지고 맨얼굴로 눈물을 흘렸네. 그리고 “언제나 함께하겠다. 반드시 여한이 없게 하겠다”고 말했네. “잊지 않을게, 함께할게, 달라질게” 하고 온 국민이 일으킨 기적의 마음과 대통령의 마음은 아름다운 한마음이었네.
그 한마음의 뜻을 풀어보면 ‘슬퍼서 눈물 흘리는 세월호를 넘어 기뻐서 눈물 흘리는 세월호가 되도록 하겠다’는 거룩한 마음이었네. 그 마음은 대통령의 화두요 온 국민의 화두이며 내 화두이기도 하네. 우리 모두는 그 화두를 풀고자 골몰해왔네. 하지만 길을 찾지 못한 채 분열하고 갈등하는 정쟁의 세월호 감옥에 빠져 버렸네. 혹시 그 감옥에서 빠져나올 기적의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영화 <나쁜 나라>를 보았네. 처음처럼 끝났을 때도 여전히 답답했지만 기적처럼 새로운 질문이 떠올랐네. 또다른 문제의식으로 우리 문제를 바라보면 또다른 길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네. 그 물음을 갖고 이야기해 보겠네.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가. 대통령인가, 내각인가, 국회의원인가, 기업인인가? 만일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나쁜 나라임이 분명하네.
반면 나라의 주인이 우리 시민이라면 대한민국은 나쁜 나라가 아님이 분명하네. 아니, 너무 훌륭한 나라이네. 왜 그런지 한번 짚어 보겠네.
친구야,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세월호 그들은 내 새끼, 내 부모, 내 형제, 내 친구가 아니네. 평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네. 그런데 온 국민이 자신과 별 관계도 없는 그들의 슬픔·아픔·불행을 자신의 것처럼 함께했네. 구체적으로 삶을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고 새로워지겠다고 다짐을 했네. 놀랍지 않은가? 이에 더하여 세월호의 기적을 위해 천만명 서명을 했네. 곳곳에서 아이들과 약속한 대로 생명중심, 안전중심의 사회를 만들겠다며 기도도 하고 촛불도 밝히고 순례도 하고 있네. 돈도 출세도 명예도 되지 않는 <나쁜 나라> 영화도 만들었네. 이래도 나쁘다면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좋은 나라는 있지 않네. 죽어서나 가능하다는 극락도 천국도 허망한 하나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네.
우리는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때가 가장 좋은 때’라는 경험적 진리를 알고 있네. 다시 세월호가 일으킨 기적의 첫마음을 기억하며 또다른 문제의식으로 또다른 길찾기가 절실하네. 굳이 비유하자면 국민은 강물이고 대통령, 행정부, 의회는 물 위에 떠 흘러가는 나룻배이네. 세월호가 일으킨 기적의 첫마음을 도도한 강물 되어 흘러가게 하는 것이 왕도임을 믿어 의심치 않네. 그 도도한 강물을 형성하기 위해 광화문광장에서 국민의 지혜와 뜻을 모으는 이야기판을 열어야 하네. 더 늦으면 안 되네. 지금이 적절한 때라고 생각되네. 자네가 그 물꼬를 터 주었으면 하네.
도법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
도법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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