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군, 명군, 폭군, 혼군(昏君, 판단이 흐린 임금), 암군(暗君,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 박근혜 대통령은 어디에 해당할까. 어버이연합을 비롯한 아스팔트 극우 인사들에게야 하늘이 내린 성군이고 명군이겠지만 과연 그럴까. 폭군까지야 아니겠지만(무자비한 권력행사를 보면 그런 면모도 다분하긴 하다), 국정 운영 곳곳에서 나타나는 판단력 결여와 사리 분별의 어두움은 혼군이나 암군이라는 칭호가 더 어울린다. 둘 중에서 하나를 고르려고 해보니 고민스럽다. 잘못된 정책을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여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는 모습을 보면 혼군이 더 적절한 것 같고, 듣는 이의 복장을 터지게 하는 유체이탈식 어법으로 많은 국민이 암에 걸릴 지경인 것을 생각하면 암군이 더 맞는 표현 같기도 한데, 사실은 그 말이 그 말인지라 구별이 무의미함을 깨닫고 고민을 접었다.
혼군·암군이 통치하는 나라의 비극은 간신배와 아첨꾼들을 통해 완성된다. 여왕께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칭하자, 지금까지 말(국정교과서)이 아니라 사슴(검인정 강화)가 옳다고 수군대던 신하들이 일제히 부복해 외친다. “전하의 혜안에 그저 탄복할 따름입니다!” 심지어 왕 주변의 환관들은 “말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무리들은 북쪽 흉노들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니 엄히 처단하심이 마땅한 줄 아뢰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생사여탈권을 왕에게 저당 잡힌 신하들이야 그렇다 치고 시대의 간관(諫官)을 자처하는 자들의 행동은 더욱 괴이쩍다. 검인정 강화가 정답이라던 조중동 등 보수신문들은 최고권력자의 굳센 고집이 확인되자 자신들이 발행한 신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태도를 바꿨다. 이들이 줄기차게 외쳐온 구호가 개방과 경쟁이요, 만날 개탄하는 것이 글로벌 흐름에 둔감한 국민의 우물 안 개구리 식 사고였는데, 갑자기 역사교과서만은 폐쇄와 독점만이 살길이라며 스스로 반글로벌리즘의 우물 안으로 뛰어들었으니 도대체 어인 일인가.
최근 한 보수신문사 사주는 국정화 찬성 논조를 밀고 나갈 것을 지시하면서 “○○일보처럼 하지 말고 제대로 된 논리를 펼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의 진위야 확인하기 어렵지만 결과를 보면 그 신문과 저 신문 사이의 논리의 엉성함과 허접함의 우열을 재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를 두고 한 언론계 인사는 흥미로운 진단을 했다. “사주가 그런 말을 했다면 신문사 내부를 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의 귀에 들어가라고 한 말일 것이다.” 권력 비위 맞추기를 바탕으로 삼고 견강부회를 무기로 내세워 자신들의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성향은 보수언론의 생래적 유전인자인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곧잘 권력에 쓴소리를 하는 듯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권력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박정희 정권이 10월 유신을 선포했을 때도 그랬다. “민주제도의 향상과 발전을 위한 하나의 탈각”(조선)이라느니, “대통령의 충정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중앙)느니 하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10월 유신 반대를 “일부 몰지각한 정상배들의 철없는 언동”으로 몰았다. 현재 진행중인 ‘역사쿠데타’를 정당화하는 논리 가운데 하나가 분단 상황의 특수성인데, 유신쿠데타를 뒷받침했던 ‘한국적 민주주의론’이나 지금의 ‘한국적 역사교육론’의 허구성이 판박이인 점도 기막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중요한 목적이 주류 기득권 세력의 공은 부각시키고 과는 가리는 데 있다면 보수언론들은 확실한 수혜자가 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은 묻히고 이른바 민족신문으로서의 활약상만 부각될 것이다. 박정희 정권이 미화되면, 유신체제를 찬양했던 부끄러운 과거도 덩달아 희석될 수 있다. 권력의 사랑도 받고 자신들의 과거 미화라는 덤까지 챙기는데 왜 국정화 찬성에 적극 발벗고 나서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들이 간과하는 게 있다. 일제를 찬양하고 유신을 옹호했던 과거의 글들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로 남아 있듯이 지금 국정교과서를 옹호하는 글들도 또다른 오점으로 길이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사람들이 과거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이 역사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라는 경구를 남긴 올더스 헉슬리의 혜안에 다시금 경의를 표한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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