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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책을 선택할 권리 / 박용현

등록 2015-11-03 18:41

1975년 미국의 보수단체인 뉴욕어버이연합(Parents of New York United)이 학생들에게 읽혀서는 안 될 책의 목록을 배포했다. 뉴욕주 한 교육청의 간부들은 관할 중·고등학교 도서관에서 이 목록에 등장하는 11종의 책을 수거하도록 지시했다. 이들은 미국의 국가 정체성과 배치되는 “반미국적, 반기독교적” 내용의 책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사·학부모로 검토위원회를 구성해 책 내용을 판단하도록 한 결과 2종만이 교육적으로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그런데도 교육청은 이를 무시하고 최종적으로 9종의 책을 도서관에서 없애고 수업 교재로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결정했다.

이에 학생들이 반발해 소송을 냈다. 책의 교육적 가치가 아니라 교육청 간부들의 정치적·윤리적 취향을 기준으로 내린 결정이며,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책 선택권이 침해됐다는 주장이었다. 해당 책들이 보수적인 교육청 간부들의 입맛에는 안 맞았을지 몰라도, 퓰리처상 등을 수상하거나 영화로 제작될 만큼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책들도 포함돼 있었다.

미 연방대법원은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교육당국은 학생들에게 어떤 책을 읽힐지 결정할 재량권을 갖지만, 그 권한이 편협한 정치적 동기에 따라 행사돼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즉 정책 결정자들이 싫어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내용이라고 해서 이를 교육 과정에서 배제한다면, 다양한 의견과 시각을 접할 학생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권력자라 해도 무엇이 진리인지 정할 권한은 없다는 민주주의의 대전제가 여기에 깔려 있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논쟁이 펼쳐지는 다원화된 사회이며, 학생들은 머지않아 어른으로서 이 사회에 참여하게 된다. 다양한 의견과 시각을 접함으로써 학생들은 능동적 시민으로 성장할 준비를 할 수 있다… 이를 가로막는 것은 자유로운 정신을 그 싹부터 질식시키는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보며 곱씹게 되는 이야기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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