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애고 작은애고 열광하는 게임은 롤, 본래 이름 ‘리그 오브 레전드’다. 일주일여 전 열린 롤 세계 챔피언십, 일명 롤드컵 결승전 중계를 함께 봤다. 한국팀끼리 대결해 에스케이의 티원(T1)이 우승했는데,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이번 결승전에는 1만5천여명의 관객이 입장했다고 한다. 잔뜩 열중한 얼굴의 티브이 속 관중은 게임 속 캐릭터, 즉 챔프들이 격돌할 때마다 탄성을 올린다. 애들도 옆에서 “우와”, “미친”, “끝내준다” 같은 추임새를 섞는다. 동그마니 앉아 있다 문득 심심해진다. 나만 외톨이구나야.
큰애의 여가는 롤과 유희왕으로 구성돼 있다. 롤을 보거나 하거나, 유희왕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즐기거나, 아니면 그러고 싶어 안달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초등학생인 작은애는 그래도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는데, 입학과 동시에 스마트폰을 획득한 후 큰애의 일상은 그저 게임이다. 카드 게임인 유희왕을 오프라인으로 할 때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다. 눈 나빠진다, 너 게임만 하다 바보 된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협박을 뿜어보지만 먹힐 리 없다.
고등학생인 조카 말로는 10대 남학생들에게 게임은 거의 생사 문제란다. “참 못생겼다”라거나 “공부도 못하면서” 같은 말은 참아도 “게임도 못하는 주제에”란 말은 견디기 어렵다나? 게임이라면 고작 갤럭시나 테트리스가 경험치의 전부인 나로선 요즘 게임은 불가사의다. 당최 어디로 날고 뛰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결국 얼마나 빠르게 키랑 마우스를 조작하느냐는 문제 아니냐? …에, 뭐 그렇긴 하죠. 근데 그게 얼마나 대단한데요.
대단하긴 뭐가, 윽박지르려다 참는다. 노력의 값이 허망한 세상, 투자한 만큼 레벨을 올릴 수 있는 게임이 그래도 공정하게 느껴지는 걸까. 저마다 연예인을 선망하듯 게이머를 부러워하면서, 몇 남지 않은 성공에의 길을 타진하기라도 하는 걸까. 혹은 천편일률적인 질서에 짓눌려 다 살지 못하는 삶을 가상 세계에서 꿈꿔보는 건지. 롤에는 총 126종의 챔프가 있다. 가격은 500원에서 근 1만원까지 다양하단다. 가렌이며 야스오며 카타리나… 한참 주워섬기는 큰애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돈 때문에 얼마나 애를 먹였는데 참 명랑하기도. 각 챔프마다 의복 혹은 무기인 스킨도 여러 종 있다. 1500원에서 3만원까지라고 한다. 쿨럭.
모르겠다. 하긴 소녀시대 등장 이후 내가 독해할 수 없는 문화 현상이 한둘이었던가. 2007년 소녀시대가 처음 등장했을 때 충격은 아직 생생하다. 무려 아홉명! 이미 13인조 그룹 슈퍼주니어가 데뷔한 후였건만 그 소식은 내 귀에까지 미치지 못했었나 보다. 그러니까, 하나씩 다 사랑하면서 전체 또한 사랑한다는, 그런 공통 감각이 사라졌다는 거지? 아홉 중, 혹은 열셋 중 일부를 선택하고 조합하는 것 자체가 그 그룹을 좋아하는 방식이란 말이지? 이젠 팬심도 사랑도 키트로구나.
아이들이 자라난 세계는 그런 세계다. 귀염성스런 인물들이 아장거리는 초등학생용 게임마저 낯설다. 같은 팀원으로 플레이하다 좀비화되면 제 편부터 물어뜯는가 하면, 딱지처럼 뺏고 뺏기는 대신 자기 카드를 과시하는 걸로 승패를 보고, 같은 게임에서도 여러 개의 아이디를 갈아탄다. 지고 이기고 배신하고 협력하고, 그거야 인생의 한결같은 룰이겠지만, 그 양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학원을 멀리하고 애들을 키울 때 엄마의 욕심은 책 읽고 뛰어놀라는 것이건만. 아랑곳없이 애들은 오늘도 ‘만렙’만을 향해 달린다. 그 세대 나름 세상에의 적응이기를 빌어볼 뿐.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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