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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닫힌 국가, 열린 도시 / 김민웅

등록 2015-11-10 18:29수정 2015-11-10 18:30

99.9%를 “편향”이라고 주장하는 총리가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결정한 이유란다. 0.1%가 “옳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 진실이 다수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선 이 주장은 사실에 기초하지 않았다.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률이 0.1%라고 해서 나머지가 잘못되었다는 논리는, 그 책의 내용과 수준에 대한 평가가 불합격이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99.9%는 교육계를 구성하는 집단지성의 합의였다. 그 정도면 편향이 아니라 압도적이고도 보편적인 결론이다. 이걸 부정하는 0.1%는 권력이 된 독선이다. 불합격자를 합격자로 만드는 꼼수이자 조작행위이다.

국가가 역사 서술을 주도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시대에 역행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역사의 평가 대상이지 역사를 집필하는 독점권을 갖지 못한다. 이걸 어기는 순간, 그건 원천무효이자 자신이 독재권력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총리는 잘못된 국정교과서를 성숙한 시민사회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성숙한 시민사회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국정교과서 정책은 역사 집필 권한과 자격이 없는 무면허 기관이 시민사회의 권리를 탈취한 사건이며, 그걸 계속 움켜쥐려는 불법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서울시의 새 브랜드인 ‘아이.서울.유’(I.SEOUL.U)를 둘러싼 최근의 논쟁은 ‘닫힌 국가와 열린 도시의 대치’를 보여준다. 필자도 참여한 서울시 시민대학을 비롯해서 서울시 브랜드 결정에 이르는 과정 모두가 시정부와 전문가, 그리고 시민사회의 협력과 논의의 산물이다. 이른바 ‘거버넌스 체제’이다. 서울시장은 이 과정에서 전혀 발언권을 갖지 않았다. 전문가주의는 그 장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분야에 한정된 시각을 보편화하려는 경향에 기울어지기 쉽다. 일종의 전문가 독선의 위험성이다. 거버넌스는 이를 교정하는 장치이자, 시정의 권리를 시민사회에 돌려주는 것을 핵심으로 삼는다.

세대별 조화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250명에 이르는 시민참여단의 구성을 비롯해서, 서울의 자연과 역사, 문화와 시장 등 10차례의 서울 이야기 콘서트, 아이들까지 참여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또한 3차에 이르는 시민회의가 이어졌다. 서울시정부가 지원을 하면서 이루어진 이러한 시민사회의 활동은 서울을 ‘공존, 열정, 여유’라는 특징으로 정리하는 집단지성의 기반이었다. 여기서 확인된 것은 서울을 어떤 특징 하나로만 한정하고 압축하는 것은 서울의 이미지를 도리어 왜소화하고 미래적 가치를 포괄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었다.

게다가 놀라웠던 것은 최종 후보작들이 모두 20~30대 미래세대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이다. 나이가 먼저 고려된 것은 아니었고 결과가 그랬다는 것이다. 이들은 서울이 단일한 특징으로 포착되는 표현을 거부했다. 서울의 개성을 ‘이것’이라고 지목하지 않고, 시민들의 역동적인 활동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끊임없이 창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시민사회의 집단지성은 이를 다수의 지지로 옹호했다. 어떤 대상이나 상품의 특징을 딱 하나로 잡아 디자인을 하거나 슬로건을 만드는 데 익숙한 기성 전문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발상과 접근이었다. 그 결론이 바로 ‘아이.서울.유’였다. 브랜드 추진위도 이 선택에 처음에는 낯설고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그건 낡은 생각이었다.

김민웅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김민웅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나와 너, 그 사이에 서울이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인지는 이제 시민사회의 미래적 가능성에 달려 있다는, 열려 있는 철학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나와 너, 우리와 세계를 이어주는 서울이 되자는 문명사적 비전도 담겨 있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미래세대가 꿈꾸는 무한한 미래가치가 들어 있다. 열린 도시의 힘이다. 국정교과서와는 전혀 다른.

김민웅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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