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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반 꼰대’ 세대 역사교육 / 전정윤

등록 2015-11-10 18:38수정 2015-11-10 22:16

“그래도 국정화에 반대하는 이들은 웃는 수밖에 없다. (…) 유쾌하고 끈질기게 잘못을 바로잡는 운동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무산되거나 머지않아 폐지될 것이다.”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가 9일치 <한겨레>에 기고한 글의 마지막 부분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 방법밖에는 달리 어쩔 도리가 없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인 것 같다. “웃자, 웃자” 하면서 낙관주의라는 ‘정신승리’ 기법으로 국정화 사태를 주시하다 보니, 박근혜 대통령이 예상치 못했을 것 같은 ‘부작용’이 눈에 들어온다. 국정화는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나 합리화가 될 수 없지만, 정부가 예견치 못한 역효과가 그나마 한국 사회와 역사교육에 있어서 ‘불행 중 다행’이 될 수 있다는 기대다.

전지적 박 대통령 시점에서 보면, 청소년들의 국정화 반대와 자발적인 역사 공부는 정책 추진 중에 일어난 대형 참사에 가깝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오래전부터 즐겨 인용해온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말처럼,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박 대통령이 한국사를 수능 필수화하고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이유이기도 한데, 미래세대가 예상 밖의 ‘각성’을 통해 교과서에 없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과거’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최근 고교 선생님과 식사를 하다가 아이들이 국정화에 얼마나 반대하는지 물었다. 선생님의 체감으로는 국정화 반대와 찬성 비율이 ‘9 대 1’ 정도 된다고 했다. ‘에이, 설마’ 하고 웃어넘기려는데 잠시 후 식사 자리에 합류한 다른 선생님은 학생들의 국정화 반대 비율이 ‘99%’ 정도 된다고 한술을 더 떴다. 이 학교에서 파워포인트 경연대회가 있었는데,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조사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3개 반 학생 가운데 2명만 답변을 유보하고 나머지는 모두 국정화에 반대했단다. 결과에 놀란 교장 선생님이 안절부절못할 정도였다.

“본능적으로.” 아이들이 왜 그렇게 국정화에 반대하는지 물었더니, 서로 다른 학교에 재직 중인 두 분 선생님의 답변이 일치했다. 민주화 이후 태어나 자유가 몸에 밴 아이들이 서술 내용을 떠나 ‘본능적으로’ 국정교과서에 대해 “꼰대 교과서”라는 거부감을 느낀다는 지적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 역시 상당수 아이들한테 ‘본능적으로 싫은’ 대상이 됐는데, 박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모양새가 아이들의 반발을 불렀을 가능성도 언급됐다.

박 대통령의 선을 넘은 아집이 ‘반 꼰대 본능’을 자극한 덕에, 이제 아이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건국절, 6·25와 북한, 독재와 민주화운동, 경제성장과 불평등, 이승만·박정희와 김구처럼 ‘정치적 논란’이 되는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교실에서 선생님들이 제대로 가르치려 들었다면 정부가 당장 정치적 중립 운운하며 수사기관을 끌어들였을 법한 내용들이다.

전정윤 사회정책팀 기자
전정윤 사회정책팀 기자
박 대통령이 맨날 전교조 탓을 하는 ‘학생들의 정치화’도 전교조가 아닌 대통령 자신이 불을 댕겼다. 좀 더 적극적인 아이들은 ‘국정교과서 반대 청소년행동’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어지간한 시민단체보다 더 왕성한 반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주말이면 교복을 입고 거리로 나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국정교과서 확정고시 철회”를 외친다. 상황이 이쯤 되니 ‘역사의 아이러니’에 대한 기대감도 커진다. 지난 9월 인터뷰했던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정부는 국정교과서로 배운 세대들이 민주화의 주역이 됐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박정희 정권이 유신 시절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면서 추구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다.”

전정윤 사회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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