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정교과서에 반대한다. 한국사 교과서 논란이 아니어도 어느 과목이든 한 가지 교과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미리 말하지만 검인정 방식이 좋다는 뜻도 아니다. 결론부터 판단한 것이 아니라 경험하고 느꼈으니 분명하게 주장할 수 있다.
몇 해 전 <보건> 교과서를 만드는 데 참여한 뒤 내린 결론이다. 그러고 보니 <보건> 교과서는 존재를 모르는 사람도 많을 듯하다. 2009년 교과목이 부활하면서 검인정 교과서가 만들어졌으니, 학생이 가까이 없으면 낯선 과목일 것이다. 지금도 초·중·고등학교에서 그 교과서가 쓰인다.
참여를 처음 부탁받았을 때 했던 각오가 생생하지만, 금방 좌절한 것도 잊지 못한다. 일이 어그러진 것을 깨달은 것은 준비 모임 첫날. 저자들 앞에 지침, 기준, 내용체계 등 이름도 헛갈리는 촘촘한 ‘가이드라인’이 놓였고, 정작 교육목표나 전체 구성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교과서를 만든다는 것에 실망했다.
그다음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대로다. 영역과 세부내용까지 정해져 있는데 더하고 뺄 것이 무얼까. 흡연을 예로 들면 이렇다. 중학교 과정에 ‘니코틴 중독과 흡연 예방’이라는 항목이 들어 있고, “담배의 중독성을 알고 흡연의 권유를 거절하는 방법과 금연 방법을 익힌다”가 세부내용이다.
흡연 거절과 금연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꼼꼼한(?) 지침은 흡연과 금연을 한 가지 색깔로만 보게 하고, 다른 생각과 해석, 새로운 상상을 가로막는다. 개인이 선택하고 결단하는 ‘금연’ 프레임만 남고, 담뱃값을 올리거나 담배회사를 통제하는 ‘담배 규제’는 들어갈 틈이 없다.
특정 주제를 미리 정해 놓은 ‘선택 편향’이 더 힘들었다. 무엇을 빼고 넣느냐에 따라 학습의 폭과 다양성이 달라지는 것은 자명한 일. <보건>이라면, 가난과 같은 사회적 요인이 건강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생각할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나라가 신경을 곤두세우는 건강 불평등은 어떤가. 예민한 사회문제이자 건강문제인 직업병도 비슷하다. 양으로 조금, 그것도 개인 예방을 다루는 정도에 머무른다.
<보건>이 국정이 아니라 검인정인 것, 생물학을 포함하고 있어 정치와 경제, 사회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는 것도 기억하자. 내 짧은 경험에서 얻은 결론은 분명했다. 검인정 체제로는 시대 흐름에 맞는 교과서를 만들기 어려우니 바꿔야 한다는 것. 검인정이 이러니 국정교과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마침 시빗거리가 되었다고 국정 <한국사> 교과서 반대로 끝낼 일이 아니다.
누가 국어 교과서도 좌편향이라고 했다니 차라리 잘되었다 싶다. 이왕 벌어진 일, 모든 교과서를 묶어서 묻고 답할 기회가 열렸다. 국사와 국어, 보건 또는 그 어느 과목이라도 좋다. 한 가지 책으로 가르치고 배워서 공장에서 찍어내듯 같은 사람으로, 그것도 한쪽으로 치우치게 키우고 싶은가. 그런 교육으로 한국 사회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가.
세계사의 ‘갈라파고스’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한 교과서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모두 함께 교과서 문제를 학습했으니 대전환을 시도할 수 있는 토대는 만들어졌다. 역설적 계기라고 할까, 국정은 물론 무늬만 자율인 검인정도 넘어설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다. 교육부 장관이 지향한다고 했다는 바로 그 방향, 자유발행제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첨언. 내 작은 희망은 그다음에야 이루어질 것 같다. 학년은 상관없다. 금연 방법은 익혔으니 어떤 교육환경이 흡연을 조장하는지 논쟁하는 교실을 꿈꾼다. 다양한 관점으로 쓰인 여러 교과서를 참고하면서.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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