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계절이었습니다. 교육부는 10월12일 국정화 방침을 행정예고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행정절차법에서 정한 최소 행정예고 기간인 20일이 지나자마자, 바로 국정화를 확정고시하였습니다. 이날은 마침 학생독립운동기념일(학생의 날)이었습니다. 우연치곤 참 역설적이었지요.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은 1929년 11월3일 광주에서 일어난 항일학생운동을 기억하는 대한민국의 법정기념일입니다. 유신헌법 선포 이듬해인 1973년에 폐지되었다가 1984년에 부활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반대말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입니다. 전체주의 국가란 북한처럼 국민에게 유일사상을 주입하는 나라를 뜻합니다. 이에 반해 자유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존립의 근거로 삼습니다.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하는 게 정상일 뿐만 아니라 발전의 동력임을 인정하는 정신이지요. 전체주의는 생각의 차이를 없애려 합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단일한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국정화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북한식 전체주의에 더 잘 어울리는 개념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국정화의 결과물인 역사교과서에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내용이 들어가게 될지는 적어도 제겐 부차적인 논점입니다. 물론 일제 강점기에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만주군 장교로 활약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력을 헤아리며, 국정 교과서가 친일의 흔적들을 흐릿하게 할 거로 예측할 순 있습니다. 또 유신체제를 떠올리면, 독재라는 과정의 문제가 경제성장이라는 결과의 문제로 치환될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둘 다 의심이 가는 대목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합리적 의심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교과서’ 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나쁜 교과서’의 대립은 핵심을 빗나간 쟁점이라 여깁니다. 국정 교과서 체제 아래서 지금 국정화에 반대하는 이들이 만족스러워할 만한 좋은 교과서가 나온다고 가정해보지요. 그런 논리적 가능성까지 부정할 순 없습니다. 그럼 국정화를 해도 괜찮을는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교과서를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교과서를 만들 것인가?’가 핵심 논점이기 때문입니다.
소통의 문제를 생각해봅니다. 한국 사회에서 토론은 쉽지 않습니다. 애초부터 토론할 마음 없이 억지만 부리는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면, 냉소와 야유도 할 수 있겠지요. 한데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상대의 마음을 얻는 방식이 되어야 하리라 봅니다. 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를 저지르지 않고 ‘자비로운 해석’을 해야 할 필요도 그래서 있습니다. 상대방의 논리를 가장 약하게 만들어 공략하는 게 허수아비 공격이라면, 반론을 펴기에 앞서 그 논리를 상대방에게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이해해주는 게 자비로운 해석입니다. 자비로운 해석은 자기 자신의 논리를 강하게 하는 데도 보탬이 됩니다. 마치 운동 시합에서 약팀보단 강팀을 상대하는 게 자신을 더 강하게 할 수 있듯 말입니다.
황망함 속에서도 자비로운 해석의 정신을 잃지 않고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고 싶다는 정부·여당의 주장을 일단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리고 그걸 믿는 분들의 선의를 존중합니다. 그래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해선 안 되는 일입니다. 하나의 역사관만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이기 때문입니다. 자유민주주의의 전제인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기에 용인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정권이 바뀌고 정말로 멋진 교과서가 국정 교과서 체제 아래서 나온다 해도, 저는 그 훌륭한 국정 교과서에 반대할 것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지금, 국정화야말로 ‘정상의 비정상화’입니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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