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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앉은뱅이 시대, 실어증의 나라

등록 2015-11-18 18:52수정 2015-11-18 21:20

우리 나이 또래의 언론계 사람들은 기자 초년병 시절 김중배 칼럼, 최일남 칼럼의 세례를 받으며 자라난 세대다. 그들의 칼럼은 기자들에게는 살아 있는 글쓰기 교과서이기도 했다. 눈부신 표현들 속에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비장미가 넘쳐나는 한 분의 글과, 유장한 문체에 해학이 담긴 맛깔스러운 표현으로 정곡을 꿰뚫는 다른 한 분의 글을 비교 분석해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 칼럼들을 읽으면서 우리 신출내기 기자들은 나도 언젠가는 이런 명칼럼니스트가 되리라 하는 희망을 키워갔다.

나 역시 한때 김중배 선생(이 동네 사람들한테는 선배라는 호칭이 더 친숙하다) 같은 글을 써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지닌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포기했다. 그 글은 나 따위의 빈약한 재능과 얕은 사고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높은 벽이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자위했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어, 그런 피를 토하는 듯한 지사형 글쓰기 시대는 지났어라고.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책꽂이에 모셔놨던 김중배 칼럼집들을 다시 들춰내 펼쳐본다. 누렇게 변색된 책갈피 속 글자들은 이제는 생명을 다한 사자(死字)여야 마땅할 텐데 오히려 더욱 살아서 펄떡거리는 활자(活字)로 가슴에 날아와 꽂힌다. 허위의 언어와 밤의 폭력을 질타하면서 동트는 새벽이 오기를 갈구했던 그의 폭포수 같은 문장이 새삼 간절해진 상황, 그것은 시대의 비극이고 김중배의 비극이 아닐까.

지난 13일 열린 ‘심산상’ 시상식에서 김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심산 선생이 살아 계신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선생님이 그렇게 바꾸고 싶었던 나라가 이런 나라입니까’.” 일제 경찰의 고문으로 두 다리가 마비된 뒤 스스로를 벽옹(앉은뱅이 노인)이라고 불렀던 이가 바로 심산 김창숙 선생이다. 그 수상강연을 들으며 그분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어졌다. 첫번째 칼럼집 제목이기도 했던 ‘민초여 새벽이 열린다’는 예언은 끝내 헛된 예언이 아니었는가. ‘민은 졸인가’라는 한탄 그대로 이 땅의 백성들은 여전히 장기판의 졸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심산이 살아 있다면 자신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으리라고 그는 말했다. “에이, 빌어먹을 놈, 이따위 나라를 만드는 데 네가 일조한 놈 아닌가.” 그 대답은 고스란히 내게로 다가온다.

며칠 전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를 두고 이런 비난이 난무한다. “광우병 사태 때 시위 현장에 나왔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맞는 말일 것이다. 바로 그 대목에 비극이 있다. 탄압하고 붙잡아가고 두들겨 패는 쪽이나, 저항하다 두드려 맞고 신음하는 쪽이나 모두 ‘그때 그 사람들’ 내지는 그 후예들이다. 그것은 독재 정권 시절뿐 아니라 거슬러 올라가면 심산 선생을 앉은뱅이로 만들었던 시대와도 맞닿아 있다. 면면은 바뀌었을지 몰라도 저항하는 민중을 폭도로 불렀던 세력의 후예들은 여전히 시민을 향해 폭도라고 꾸짖는다. “지금 같으면 심산도 종북으로 몰릴지 모르겠다”는 김 선생의 말은 그래서 정곡을 찌른다. 미래를 향해 성큼성큼 나아가야 할 때 우리 사회는 구시대 추억 되살리기에 몰두하는 사람들에 의해 앉은뱅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은 앉은뱅이 나라일 뿐 아니라 실어증에 걸린 나라이기도 하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욕하지 말기 바란다. 실어증은 단지 하고 싶은 말을 못한다는 뜻만이 아니다. 심산을 비롯한 선열들의 값진 희생에 힘입어 우리는 말과 글을 되찾았으나 이제 말은 말이 아니고 글은 글이 아니다. 정상-비정상이라는 단어를 놓고 사람마다 해석을 달리하는 것을 정상이라고 말해야 할지 비정상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 모국어 자체를 잃어버린 ‘실어’의 시대다. 평생 말길 글길을 탐구해온 김 선생은 탄식했다. “말 자체가 공유되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소통하겠는가. 이것이 아픔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김 선생이 수상소감 연설을 심산의 시 한 대목으로 끝맺은 것을 흉내 내 이 글도 그가 쓴 칼럼 한 구절로 마치려 한다. “사랑도 목마르고 평화도 목마르고 진실도 목마르다. 진실의 대화도 따라서 목마르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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