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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선희의 밑줄 긋기] 박근혜 정부의 ‘청년’ 사용법

등록 2015-11-26 18:38수정 2016-01-22 14:34

박근혜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청년’에 대한 애정과 걱정이 커 보인다. 지난달 27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는 ‘청년’이 32번 등장한다. “청년들의 고통, 청년들의 희망, 청년들의 간절한 염원, 청년들의 미래….” 심지어 ‘국민’(27번)보다 많다. 주요 장관들의 발언에서도 청년은 빠지지 않는다.

정부의 청년 걱정이 두드러지는 대목은 재정문제를 언급할 때다. 기성세대가 돈을 흥청망청 써서 나랏빚이 쌓이면 고스란히 미래세대의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복지를 함부로 늘릴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제시된다. 박 대통령이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씩’이라는 공약을 지키지 못한 이유도 “다음 세대에게 과도한 경제적 부담을 지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은 그렇게 후세대가 걱정되면 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비 한참 낮은 수준인 조세부담률(2013년 기준 한국 17.9%, OECD 25.8%)을 올려 국고를 채우고 국가부채를 줄이지 않는지다. 혹시 세금을 올리면 가장 싫어할 대기업이나 고소득층이 청년보다 더 신경쓰이는 것인가.

요즘 청년이 자주 호출되는 지점은 노동시장 개편과 관련해서다. 정부는 “청년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동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년부터 정년이 60살로 늘어나면 청년 일자리가 더 줄어들 것이니 55살쯤 되면 월급을 깎아야 한다(‘임금피크제’)는 것이다. 반발과 논란을 무릅쓰고 정부가 공기업의 임금피크제를 밀어붙이고 있는 근거다. 우리 사회에서 자의건 타의건 정년 60살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정원이 정해져 있는 공기업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정부의 개편 방안 중 파견근로 허용 범위를 확대하자거나, 계약직 노동자의 계약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자거나, 실적이 낮은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자는 부분에 가면 이게 어떻게 청년 일자리와 연결되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 모든 내용이 지난해 전경련 등 경영자단체가 제출한 건의목록(‘규제기요틴 과제’)에 들어 있다는 사실도 의아하다.

반면 청년단체와 많은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청년고용할당제(공기업 정원의 3% 이상을 청년으로 채용하는 제도)의 민간 대기업 적용이나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방안은 거부된다. 이런 방안들은 기업에 ‘부담’을 주고 재정이 너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란다.

슬슬 정부의 ‘진정성’이 의심되기 시작한다. 의심을 더욱 키운 사건은 최근 불거진 청년복지 논란이다. 서울시가 취업 준비 청년 3천명에게 6개월간 월 50만원씩 사회참여활동비를 주겠다고 하자,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명백한 포퓰리즘 정책” “무분별한 무상복지 사업”이라고 비난했다. “반드시 막아라”는 지시도 내렸다. 불과 두달 전에 “우리 사회 가용 자원과 역량을 청년고용에 다 걸어야 한다”(9월23일)고 했던 이가 말이다. 독일처럼 대학등록금을 무료로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스웨덴·핀란드처럼 등록금에 생활비 보조금까지 대주겠다는 것도 아닌데.

안선희 사회정책팀장.
안선희 사회정책팀장.
이쯤 되면 정말 헷갈린다. 정부가 청년을 걱정하는 것인지, 더 걱정하는 누군가를 위해 청년을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누르기 위해 미래세대의 빚부담을 강조하고, 기업들의 중장년층 인건비를 줄여주기 위해 청년 고통을 내세운 건 아닌지. 우리 사회 모든 세대가 시달리고 있는 삶의 불안이 불평등한 노동·소득구조와 뒤처진 복지수준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가리기 위해 세대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안선희 사회정책팀장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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