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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서울에 산다는 것 / 정아은

등록 2015-12-11 18:32

나들이를 다녀오는 길, 차창 밖 풍경이 푸르른 산천에서 조밀한 아파트로 바뀌더니 아이들 입에서 “기중기다!”라는 단말마가 터져나왔다. 아이들이 차창에 달라붙어 기중기 수를 세는 모습을 보면서, 집에 가까이 왔음을 알았다. 기중기의 숫자가 8을 넘어가면서부터는 나도 창밖을 보았다. 각종 공사현장의 가림판들 위로 높이 솟은 기중기들이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포위하다시피 둘러싸고 있었다.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도시를 채우는 미세먼지의 가장 큰 주범이 공사판과 자동차의 매연이라고 하던데 저기서 나오는 미세먼지들은 다 누구의 폐로 들어가게 될까.

이곳으로 이사 온 건 올해 초였다. 살던 곳의 전세가가 너무 가파르게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2년 전부터 이사 계획을 세우고 이곳저곳을 알아보았다. 이번에 갈 때 두고두고 살 곳을 택하자는 생각으로,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현장을 확인했다. 그렇게 택한 곳이 이곳이었다. 서울의 끝자락에 있어 전세가가 높지 않았고, 주위에 산이 있어 공기도 좋을 것 같았다. 이사 들어온 초반에는 주변 어느 음식점을 가도 북한산을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다는 데에 뿌듯해하기도 했다. 공들여 사전조사를 한 보람이 있군! 그런 만족감이 사라지는 데는,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산 조망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음식점 공터들에 주상복합 건물이 빼곡히 들어찰 예정이라는 정보를 들었던 것이다. 그 정보를 입수하기 바쁘게 이곳저곳에 분양 판촉 파라솔이 설치되더니 하늘을 찌를 듯한 기중기들이 자고 일어나면 몇 대씩 늘어나 위용을 자랑했다. 혹여 돌을 맞지 않을까 걱정하며 공사판들을 지나갈 때마다, 2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내가 대체 무엇을 조사했던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때부터 시내 어디를 가나 공사판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어느 동네를 가도 커다란 기중기가 팔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자책하던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서울의 어느 동네로 간들 기중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리! 네가 멍청한 탓이 아니었느니!

정아은 소설가
정아은 소설가
이사 계획을 세울 때 시골로 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비염을 달고 사는 아이들을 생각해 눈 딱 감고 삼 년만 시골에 살다 오자, 하고 몇 군데를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시골 이사를 감행하지 못했다. 시골로 가면 각종 강좌를 들으러 다닐 수도, 아이들을 문학 캠프에 데려갈 수도 없을 텐데, 그것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기중기의 포화에 둘러싸이게 되어, 나는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리며 혀를 찬다. 그때 확 시골로 갔어야 했는데! 그러다 이내 반문한다. 그랬다면 행복하게 살았을까? 나는 이내 고개를 젓는다. 아니, 그랬다면 지금쯤 누릴 수 없는 문화생활을 한탄하며 다시 서울로 이사갈 궁리를 하고 있을걸. 결국 나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서울에 살면 건강을 포기해야 하고 지방에 살면 문화생활을 포기해야 한다고.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나의 ‘올바른’ 자세는 무엇일까? 혹시 ‘현재 처한 상황에 만족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일까? 자기계발서의 논리에 따르면 응당 그래야 할 것이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이런 생각을 되풀이한다. 서울에 건물 좀 그만 지으면 안 될까? 이유 불문 모든 신축 공사는 지방에만 허가하는 것으로. 서울의 모든 대중교통을 무료화하면 안 될까? 그 비용은 자가용을 끌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어 충당하는 것으로.

정아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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