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그들은 28년 전의 양 김씨와는 완전히 다르다. 뛰어난 카리스마와 탄탄한 정치적 지지기반 등은 그만두고라도 정치 경력 면에서 두 사람을 모두 합해 봐야 양 김씨 한 명의 10분의 1에도 채 못 미친다. 그런데도 그들의 결별의 의미는 사뭇 무겁기만 하다. 초선 국회의원 두 사람의 헤어짐이 마치 평생 야권을 지탱해온 거목들의 결별이나 되는 듯 야당 지지자들에게 깊은 충격과 실망감을 안겨주는 현실은 한마디로 웃프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결별이 양 김씨와 마찬가지로 역사에 큰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는 인식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28년 전에는 비록 턱없는 오산이기는 했지만 4자 필승론 등의 낙관론이라도 있었다. 그만큼 여당 후보가 약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런 턱없는 상상마저도 용납하지 않는다. 고작 나오는 게 ‘폐허 위의 신축론’ 따위다. 하지만 이런 식의 ‘파괴 공법’으로는 건물이 제대로 허물어지지도 않는다. 하물며 번듯한 새 건물을 짓기를 바라는 것은 어림도 없다.
아랍 문제에 깊은 식견이 있는 한 지인은 며칠 전 식사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슬람국가(IS)는 너무나 똑같다.” 최근 들어본 말 중 가장 불온하고 무엄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그의 설명을 결론 부분만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엄청난 폭력성 등 이슬람국가는 마이너스가 될 행동만 하는데도 묘하게도 플러스로 돌아오는 구조로 돼 있다. 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는 여기에다 사악한 계산(vicious calculati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야권의 당면 과제는 이 ‘사악한 계산’에 대한 유권자들의 올바른 심판을 이끄는 일인데, 오히려 스스로 무너져내려 자신들이 심판 대상이 될 처지에 놓였다. ‘철없는 계산법’(stupid calculation)의 결과다.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기자회견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노라니 문득 그가 2009년에 출연했던 <무릎팍도사>의 장면이 겹쳐져 다가온다. 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헌신, 겸손함, 손에 잡힐 듯한 진정성 등 그때 그가 보였던 매력적이고 인상적이었던 면모와 지금의 거리는 도대체 얼마쯤일까. 추악한 정치판이 그의 본성을 오염시켰을까, 아니면 그런 미덕들이 겉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여전히 그의 내면에 살아 있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정치에 입문한 이래 그는 자신의 매력을 자꾸 잃어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제 ‘정치입문-창당-탈당’을 초단기간에 달성하는 신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돌이켜보면 그가 야당에 합류한 것은 야당으로서는 큰 축복이었다. 그가 가세하면서 18대 대선은 비로소 여야가 한번 붙어볼 만한 게임이 됐고, 정치적 역동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꼭 거기까지였다. 그는 땅에 깊게 뿌리를 내리기보다는 하늘로 마냥 올라갔고, 따뜻한 감성으로 정치를 녹이기보다는 차가운 논리로 주변을 얼어붙게 만들었으며, 약자를 보듬는 데 앞장서야 할 때 스스로 강자가 되는 데 정신이 팔렸다. 그 결과는 끝없는 내리막길의 연속이었다. 본인도, 야당도 함께. 그리고 이제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말까지 듣는 상황에 이르렀다.
애당초 야당은 그에게 적합한 정치적 선택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그에게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전통적 야당’의 유전인자가 없어 보였다. 그의 철학이나 이념, 정치적 환경 등을 고려할 때 오히려 ‘반여 비야’의 제3지대에서 승부를 내는 게 나은 선택이었을 수 있다. 그것이 그가 가장 손쉽게 선보일 수 있는 새정치였다. 그래서 그는 지금 야당을 떠나 제3지대의 진입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제는 이미 늦었다는 점이다.
양 김씨는 비록 결별했지만 뒷날 ‘소나무가 무성하니 잣나무가 기쁘다’는 말을 주고받을 만큼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미묘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렇지만 지금 두 사람은 그저 화성과 금성이요, 각자 자신의 궤도를 돌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청와대의 웃음소리가 벌써부터 낭자하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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