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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전쟁 혐오를 위해서 / 권보드래

등록 2016-01-08 18:31

1%라도, 0.1%라도, 0.01%라도 전쟁은 무섭다. 괜찮으려니 생각하지만 낌새만으로 숨이 차고 마음이 옥죄인다. 연평도 포격 때도, 작년 여름의 긴장 국면 때도 그랬다. 5년여 전 포격 직후엔 서울로 올라오는 열차 안에서 여럿이 머리 맞대고 방공호를 고민하는 말을 들었다. 몇 달 전 긴장이 최고조였던 날은 아들 군대 보낸 선배를 만났다. 함께 밥 먹으면서 전방의 꽃다운 청년들을 걱정하고, 남북한 고위급 자식들이야말로 최전선에 배치해야 한다고 핏대를 올리기도 했다.

일촉즉발이었던 1960년대 말에 비하면 지금이 낫다고 해야 할까. 북한 특수부대가 서울까지 침투했던 1968년에는 남북한 간 무려 573회의 무력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그해 초 대학입시는 이른바 1·21사태로 밤새 서울 시내 총격전이 시끄러웠던 다음날 치러져야 했으니. 그럼에도 밥 먹고 출근하고 시험 보면서 가위에 눌리지들 않았는지 모르겠다. 전쟁을 생생히 기억할 무렵이라 더했을 게다. 내 또래가 생기고 태어난 게 딱 그맘땐데, 용감도 하셨지 부모님들은.

무력을 숭배하고 정복을 당연시했던 시절은 진작 지나갔다. 전쟁을 반긴다는 이는 드물다. 그 날것대로의 폭력과 잔혹이 진짜 생인 듯 사람을 유혹하는 일이 없진 않지만 말이다. 요즘 이슬람국가(IS)도 비슷하겠으나, 100여년 전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을 때도 그랬다. 무력감에 빠져 있던 유럽 젊은이들이 흥분하고 심지어 기꺼워했단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며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봐도 그런 자취가 생생하다.

1차 대전에 이어 2차 대전까지 겪은 후 반전은 한결 확고히 뿌리를 내렸는가 보다. 그러나 똑같이 전쟁을 반대한다 해도 그 방법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한편에선 전쟁까지 불사하려는 의지만이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하고, 다른 편에선 비무장만이 평화에의 길이라고 주장한다. 양쪽의 주장을 극단화하면 ‘차라리 전쟁을 무릅쓰더라도’와 ‘차라리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쯤 되려나. 절대다수의 국가가 선택해온 길은 단연 전자다. 강요로 시작했다곤 하나 반세기토록 평화헌법을 지켜왔던 일본마저 무장을 선언한 형편이다.

마음은 ‘차라리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로 기운다. 전쟁은 무섭다. 전쟁은 싫다. 그러나 왜 적잖은 사람이 ‘차라리 전쟁을 무릅쓰더라도’를 선택하는지는 알겠다. 핵폭탄 경쟁을 부추겼던 것도 같은 논리다. 작년 여름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갔던 것도 비슷한 까닭에서다. 누군가 이 무모한 회전을 멈춰야 하지만, 그 누군가가 나여야 할 이유는 없다. 그쪽에서 날 공정하게 대한다면 나도 공정하게 보답하겠지만, 온통 야바위판, 먼저 위험을 무릅쓰는 건 바보짓이다. 무조건, 절대로, 일체의 전쟁에 반대하지만 그 너머에선 전쟁불사론이 스멀거린다.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전쟁불사론은 무력감으로부터의 극적인 탈출이기도 하다. 핵폭탄을 실험하고 확성기 방송을 재개해도 속수무책 지켜봐야 하는 처지는 뼈저리게 무력하다. 생명과 안전과 재산이 걸린 결정에 참여할 길 없이 위협당할 때,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지고 비루해진다. 그러니 어떤 전투에서건 차라리 앞장서 달려 나가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그렇다. 이 무력감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차라리 전쟁을’과 ‘차라리 죽더라도’를 다 건너서. 훨씬 굳건하고 지혜롭게 평화를 꿈꾸면서. 전쟁은 무섭다. 그러나 용기와 지혜를 위해서라도, 전쟁을 무서워하는 것보단 최선을 다해 혐오하는 편이 낫겠다. 혹 그것이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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