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다가 막대사탕이 보여서 하나 집어 들고 나왔다. 처음엔 빨아먹다가 나중엔 깨물어 먹었는데, 그 뒤부터 아랫니가 꺼끌꺼끌하고 불편했다. 뭐가 낀 줄 알고 혀로 아랫니를 몇 번 밀어내보았지만 이물감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거울을 들여다보니 헉, 아래 앞니의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사탕 좀 먹었다고 이가 떨어져 나간다는 게 믿기지 않아 여러 번 다시 들여다보았지만 이가 떨어져 나가 생긴 빈자리는 그대로였다.
“이제 시작이야. 더 나이 들면 이가 다 바스라져서 아예 뽑고 임플란트 해야 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보고 일행 중 나이가 좀 있으신 분이 겁을 주셨다. 이가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사탕에 붙어 나온 것이라고. 그러니 사탕을 탓해봐야 아무 소용 없고 그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려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칼슘 섭취에 신경 쓰고 딱딱하거나 찐득찐득한 음식을 피하라는 충고도 덧붙이셨다.
주말이라 문을 연 치과도 없어서 그 상태로 하루를 보내는데, 무얼 해도 깨져 나간 이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꾸 거울 앞으로 달려가 들여다보다가, 깨진 이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윗부분이 투명해져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금이 간 사실을 발견했다. 두려움이 뭉게뭉게 밀려왔다. 멍하니 거울을 쳐다보고 있다가 냉장고로 달려가 우유를 큰 컵 가득 따라 마셨다. 칼슘이 든 우유를 많이 많이 마시면 괜찮아지겠지? 아무리 많이 마셔도 이미 금 간 이를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큰 컵에 우유를 세 번이나 받아 마셨다. 금방이라도 이가 몽땅 다 깨져나갈 것 같고 금방이라도 내가 쓰러져 혼자 힘으로 운신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았다. 흰머리가 돋아나던 때와는 또 다른 충격. 아, 내가 나이 들고 있구나!
하룻밤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내 머릿속은 온통 일부분을 잃은 아랫니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내 존재가 온통 이로 화했다 해야 할까. 내 몸의 뼈 중 가장 단단한 뼈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는 생각, 앞으로는 이보다 더 크게 이들이 떨어져 나갈 거라는 생각. 내 의식은 계속해서 떨어져 나간 잇조각을 찾아 헤맸다. 사십 년 동안 내 몸의 일부였던 잇조각아. 대체 나를 떠나 어디로 갔단 말이냐. 나는 사탕의 일부에 붙어서 내 위장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농후한 그 작은 잇조각을, 다른 이들의 말에 의하면 너무 작아서 일부러 말하지 않으면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라는 그 잇조각을 그리워하면서 또 하루를 망연자실 보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저녁 어스름이 찾아들었을 때에야, 일부가 떨어져 나간 내 아랫니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것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는 사실도.
또 한밤을 자고 일어났을 때, 세상이 전과 참으로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살을 에는 칼바람도, 창문으로 시시각각 다른 각도와 빛깔로 비쳐드는 햇살도, 씻어서 안쳐야 할 쌀 낟알들도, 어쩌면 그렇게 생생하고 아름다운지. 그리고 그 아름다운 세상 한켠에, 떨어져 나간 잇조각을 그리워하며 며칠을 보냈던 작은 생명체가 하나 서 있었다. 세상에 그 잇조각을 그렇게 오랫동안 그리워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한 한 생명체가. 갑자기 달라진 세상을 보며 낯설어하는 그 생명체의 의식 한켠으로는 그새 칼슘 함유량이 높은 식품군이 몰려와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새우, 치즈, 시금치, 멸치, 연어, 아몬드….
정아은 소설가
정아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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