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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왼손잡이의 설움 / 이순원

등록 2016-01-22 19:00

자기와 조금 다르다는 것 때문에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차별은 종류도 다양하고 형태도 다양하고 대상과 이유도 다양하다. 그중에 태어나는 순간 이미 그 차별에 포함되는 태생적 차별이 있다. 인종차별 국가에서 차별받는 인종으로 태어나거나 남녀차별이 심한 나라에서(멀리 갈 게 어디 있나,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땅이 바로 그렇지) 여자로 태어나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차별하는 사람도, 차별받는 사람도 그걸 차별처럼 느끼지 않는 가운데 일상생활 하나하나가 온통 차별인 경우도 있다. 가장 가까운 예로 지금 당신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의 자판을 내려다보라. ‘앞으로 지우기’(backspace), ‘뒤로 지우기’(delete), ‘페이지업’(pgup), ‘페이지다운’(pgdn) 등 컴퓨터의 주요 기능키는 거의 다 오른쪽에 몰려 있다. 오른손이 사용하기 편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얼핏 좌우대칭처럼 보이는 컴퓨터 마우스 역시 왼손이 아니라 오른손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어졌다.

뭘 그런 걸 가지고, 라고 말하지 마라. 일상 전체가 그렇다. 집안에서 방문을 열든 현관문을 열든 오른손으로 잡은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비틀어 연다. 수도 역시 오른쪽으로 틀어야 한다. 왼손잡이들은 그걸 왼손으로 잡고 반대쪽인 오른쪽으로 돌린다.

얼핏 보면 좌우가 똑같아 보이는 가위도 왼손잡이는 불편하고, 오른손잡이가 사용하기 편하게 만들어졌다. 대개의 오른손잡이들은 가위가 그렇게 생겼다는 것조차 모르고 산다. 전적으로 오른손용으로 만들어진 가위를 왼손잡이가 사용하려면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들어가는 작은 구멍에 왼손의 네 손가락을 억지로 끼워 넣어야 한다.

농기구 중에서 낫과 호미는 왼손잡이가 쓰는 낫과 왼손잡이가 쓰는 호미가 구분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 물건을 흔하게 구입할 수 있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주문을 하고 여러 날을 기다려야 한다. 예전에는 왼낫과 왼호미가 공장에서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왼손잡이가 유리한 건 딱 한 가지 야구에서뿐이다. 공을 친 다음 왼손타자가 오른손타자보다 한걸음 반 빠르게 1루까지 간다. 또 공을 던질 때 왼손투수의 시선이 늘 1루 쪽으로 열려 있어 견제하기가 유리하다. 그래서 다른 운동보다 야구에 유독 왼손잡이 선수가 많다.

그런데 스케이트로 넘어가면 상황은 확 달라진다. 그냥 한마디로 왼손잡이 스케이터는 없다. 왼손잡이는 링크를 오른손잡이 반대편으로 돌아야 한다. 몸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다. 만약 김연아가 왼손잡이로 태어났다면 어린 시절 링크 회전방향에 대한 스트레스로 스케이트를 진작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일상생활에 컴퓨터만큼이나 중요하게 사용하는 자동차 역시 사실은 오른손잡이 전용 물건이다. 그걸 왼손잡이들이 오른손잡이 전용 가위를 억지로 쓰듯 맞춰 쓰는 것이다. 세계적인 카레이서들 가운데 왼손잡이가 없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거리에서 위험도 그만큼 높아진다.

어디서 읽은 글인데 왼손잡이들은 오른손잡이들보다 수명이 5년쯤 짧다고 했다. 오른손잡이 위주로 오른손잡이가 편하게 만들어진 세상에서 왼손잡이는 스스로 느끼든 느끼지 않든 일상생활 자체가 스트레스고 순간순간의 일들 모두가 해결 없는 차별이다.

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이 글을 읽으며 어떤 사람들은(이런 데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살아온 오른손잡이들은) 뭐 그런 걸 차별이라고 ‘치사하게’ 말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남녀 차별처럼 큰 불편이든 작은 불편이든 왼손잡이의 숙명적 불편과 차별이 있다는 얘기다.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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