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핵시험은 북한의 마지막 핵시험이 될까?’
현재 시점에서 볼 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 같다. 지난 1월6일 북의 핵시험 이후 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강력한 유엔 제재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제재를 통해 북의 추가 핵시험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이제 소수에 불과하다. 대북 제재를 중심에 둔 현 정책이 국민들에게는 점점 ‘보여주기 정책’으로 비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도 이제 현 상황을 냉철하게 점검해봐야 한다.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필자는 그 ‘실질적 방안’의 하나로 평화협정 문제를 우리 내부에서 공론화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전쟁을 치른 교전국들은 정전협정을 통해 전투행위를 중지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의 종결은 교전 당사국 등이 모여 각자의 권리와 의무를 정하는 평화협정을 맺음으로써 이루어진다. 미-일의 태평양전쟁을 예로 들어 보자. 모든 전투행위는 1945년 8월15일 중단됐지만, 전쟁이 국제적으로 종결된 것은 1951년 9월8일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라는 평화협정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한반도에서는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지금까지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고 있다. 평화협정이 없는 상태에서 북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에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이 북핵 문제의 사실상 출발점이다. 따라서 한반도 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방안도 평화협정에서 찾는 게 맞다.
실제로 6자회담이 내놓은 가장 포괄적이고 정교한 북핵 해결방안인 2005년 ‘9·19 공동성명’의 핵심 내용도 평화협정이다. 9·19 공동성명의 얼개는 △북한이 모든 핵프로그램을 포기하고 △북-미 간 관계 정상화를 이루면서 △최종적으로는 평화협정을 통해 한반도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평화협정을 북의 요구, 북의 주장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실제로 북은 핵실험 이후인 지난 1월10일치 <노동신문> 기사 ‘평화협정체결에 응해나서야 한다’ 등을 통해 남한 당국이 아닌, 미국에 평화협정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기본적으로 평화협정은 남북 문제가 아닌 북-미 간의 문제라는 태도다.
하지만 북한의 이런 주장은 우리가 이 문제를 소극적으로 대하며 방치해온 탓도 크다. 만일 우리가 평화협정에 대한 적극적인 로드맵을 가지고 있다면, 북한이 평화협정 대상에서 우리를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남북 간 대화다. 가령 평화협정과 관련해 남한의 주요한 우려 사항 중 하나였던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보자. 이 문제와 관련한 주요한 진전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이루어진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주한미군의 주둔을 허용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현재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핵 문제는 출구 없는 미로 속으로 점차 깊이 들어가는 양상이다. 그 사이에서 미국은 한·미·일 3각동맹이라는 이득을 챙기면서 B-52 등 핵전략자산을 보다 쉽게 한반도에 투입하고, 중국은 이에 맞서 ‘둥펑(DF)-31A’ 등 더 발전된 핵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가 북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이 한반도는 국제적으로 핵이 가장 밀집된 지역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구도가 깊어지면 핵 문제의 궁극적 패자는 남북한 모두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9·19 공동성명 속 평화협정 문제를 꺼내 다시 살펴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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