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자란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가장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이다”(마크 트웨인), “애국심은 사악한 자의 미덕”(오스카 와일드)…. 애국이라는 말에 깃든 허위의식을 꼬집는 말들이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피난처”라는 18세기 영국의 문필가 새뮤얼 존슨의 어록일 것이다. 이 말의 의도를 놓고는 여러 가지 설왕설래가 오가지만 어쨌든 이 말은 ‘가짜 애국심’을 풍자하는 경구로 지금도 심심치 않게 회자된다.
이 말에 대입해보면 황교안 국무총리는 ‘영민한 악당’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황 총리는 인사혁신처에서 내놓은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의 ‘공직 가치’ 조항 중에서 애국심과 책임성, 청렴성만 남기고 민주성·다양성·공익성 등 6개의 가치를 삭제하도록 지시했다. 학문적으로 애국심은 공동체 구성원들 간에 존재하는 차이와 다양성, 민주주의와 충돌하는 가치로 받아들여진다. 황 총리는 민주성·다양성 등의 가치를 그대로 놓아두면 애국심을 무기로 공무원을 옥죄는 데 말썽의 소지가 생길 수 있음을 미리 간파한 것이다. 역시 일국의 총리답게 그는 인사혁신처 공무원들보다는 ‘학문과 식견’이 한 수 위인 셈이다.
그러면 왜 악당인가. 이 정부의 고위직 공무원들 중에는 애국하기보다는 애국이라는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넘쳐난다. 그 선두에 서 있는 사람이 황 총리다. 애국심을 판별하는 가장 기본적인 잣대는 군 복무다. 군에 다녀왔다고 해서 모두가 애국자인 것은 아니지만 국방의 의무를 회피한 사람이 애국자가 아닌 것만큼은 분명하다. 황 총리가 진정 애국심이 있다면 ‘두드러기’ 따위의 흔한 질병을 핑계 삼지 말고 당당히 국방의 의무를 다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무종(재신검) 판정도 받지 않고 곧바로 면제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애국심을 자신의 최대 피난처로 삼고 있다.
어디 황 총리 한 사람뿐인가. 애국심·청렴성·책임성 등 이 정부가 내세운 공직 가치를 현재의 국무위원들에게 적용해 보면 아마도 국무회의 자체가 성원 미달로 열리지 못할 것이다. 군 면제자들과 각종 도덕성 의혹 연루자들이 애국심과 청렴성을 공직 가치로 내세우는 것 자체가 한편의 코미디다. 요즘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홍용표 통일부 장관부터 그렇다. 그는 애국심(겉무늬는 석사장교 출신이지만 ‘임관 당일 전역자’), 청렴성(위장전입, 세금 탈루,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 등)에서도 낙제점이지만, 개성공단 자금의 북핵 개발 전용 문제를 둘러싼 잇따른 말 바꾸기에 이르면 책임성이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민망하다.
지금 이 나라의 비극은 바로 그 대목에 있다. 자기만이 나라를 사랑한다고 여기는 분께서, 애국보다는 애국이라는 말 하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통치하는 데서 비극은 시작됐다. 그들은 자신들과 뜻이 다른 사람들의 나라 사랑은 나라 사랑이 아니고 자신들만이 진짜 애국자라는 ‘애국 독점주의’의 덫에 갇혀 있다. 그들은 안보의 틀을 확고히 다지는 실천적 방략을 짜내기보다는 ‘종북세력’ 타령에 더 힘을 쏟고, 제대로 된 경제정책을 만들어내느라 고심하기보다는 노동자들의 애국심 부족을 탓하는 데 열을 올린다.
이런 착각과 환상, 허위의식의 결과는 지금 눈앞에 나타난 그대로다. 안보 위기, 경제 파탄, 외교 실종, 국격 추락 등 총체적 난국이다. 발등의 불로 떨어진 안보 위기만 해도 정권 담당자들의 외교·안보적 상상력 부족과 국제정치에 대한 무지 때문이지 국민의 애국심 부족 탓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들은 여전히 ‘애국심과 단합’ 타령이다. 그러니 이 땅에서 새뮤얼 존슨의 말은 수정본이 필요하다. 애국심은 무능력자, 무책임자, 바보들의 마지막 피난처라고.
미국의 문필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에드워드 애비는 “애국자는 정부에 맞서 자신의 나라를 지킬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민이 ‘정부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할’ 역설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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